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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나는 누구인가 (7) 바벨탑은 누가 쌓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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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행복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창세기 10장에서는 노아의 세 아들 <셈 - 함 - 야펫>의 후손들을 열거하며 노아의 족보를 길게 늘어놓는다. 타락한 인류에 대한 벌로 내려진 대홍수 이야기를 끝으로 하는 이 족보는 의인 노아의 가족에 내리시는 축복으로 이해된다. 하느님과 함께 살아갔던(6,9 참조) 노아의 가족은 비록 적은 숫자이지만 후손 전체에 축복을 가져다준다. 소수가 전체를 구원하는 역할을 한다는 이야기는 아브라함에게서도 그대로 해당된다. 타락한 도시 소돔을 멸망시키시려는 하느님께 아브라함이 아뢴다.

“혹시 그곳에서 (의인) 열 명을 찾을 수 있다면….” 그분 응답은 분명했다. “그 열 명을 보아서라도 내가 (소돔을) 파멸시키지 않겠다”(18,32).

그러나 축복 이야기도 잠시, 하느님의 크신 자비에 감사할 줄 모르는 인류는 다시금 자기도취에 빠진다. 사람들은 하느님을 잊어버리거나 외면하는 정도를 뛰어넘어, 그분 영역에까지 쳐들어가려는 우를 범하고 만다. 그런 인류의 모습을 요약하여 고발하는 장면이 바벨탑 이야기다. 창조주를 외면한 인간은 자신의 한계성을 망각하고서 외쳐댄다.

“자, 성읍을 세우고 꼭대기가 하늘까지 닿는 탑을 세워 이름을 날리자”(11,4).

이 구절을 읽다 보면 절대로 건드리지 말라 하신 나무에 손을 대어 그 열매까지 따 먹은 아담내외의 모습이 금방 떠오른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무엇을 원했을까? 사람들은 하늘 꼭대기까지 이르는 탑을 세워 자신의 이름을 날리고 싶었다. 성경에서 ‘이름’은 명성과 권위를 대변해준다. 이 이야기를 통하여, 성경 저자는 바빌론을 중심으로 정치와 종교의 왕국을 세우려 했던 지도자들을 비판하고 있다. 그들의 제국주의 정책, 그 발상을 고발하고 있다. 정치 종교의 통일을 이루어 온 인류를 자기 손안에 넣으려는 지도자들을 꾸짖고 있다. 하지만 인간이 산과 들, 개울과 강을 파헤쳐 대도시는 건설할 수는 있지만, 들국화 한 송이도 만들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성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바벨탑 건설의 의미를 돌아보자. 바벨탑은 하느님 간섭을 받지 않고 독립하여 살고 싶었던 인간성을 대변해준다. 삶의 중심을 영원하신 분에 두지 않고 나 자신에게 두려는 인간성의 표현이다. ‘하느님을 제쳐놓고 모든 것을 우리네 인간끼리만 해보겠다’는 사고방식의 표출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명 한계가 있다. 근대 철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데카르트는(1596~1650) 사고의 중심을 자신 안에 두고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

“내가 생각하니까 내가 존재한다.(Cogito ergo sum.)”

나를 강조하는 것은 좋지만 결국 이런 논리에서는 내가 없으면 하느님도 소용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모든 것을 나 중심에서 시작하고자 하는 발상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 인류에 대한 하느님 창조의 영향력은 한계에 부딪힌다.

그분의 창조는 어디서 끝나는가? 천지창조로 끝이 아니다. 그것은 없음(無)으로부터의 창조다(creatio ex nihilo). 또 다른 창조가 있는가? 있다. 그것은 지속적인 창조다(creatio continua). 창조주께서 한번 이루신 피조물에 지속적으로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시기에 이 세상, 우주 천체가 질서 있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간은 ‘바벨탑’을 쌓기 전에 그분께 “이래도 됩니까?”라고 여쭈어야 하지 않을까?

그분을 제쳐놓고 제멋대로 행한 인류에 대한 그분의 응답은 무엇일까.

다음 구절이 답을 준다.

“주님께서 거기에서 온 땅의 말을 뒤섞어 놓으시고…”(11,9).

사람들을 세상 곳곳으로 흩어버리신다. 그리하여 바벨탑 건설로부터 행복을 찾고자 했던 인류는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혼돈을 맛본다. 쓴맛을 보게 된 것이다. 질서와 소통이 아니라 무질서와 혼란 곧 소통부재의 틀 속에 갇혀버린다. 그런 인류에게 또 다른 구원 희망이 있는가?



신교선 신부는 1979년 사제수품 후, 스위스 루체른 대학교에서 성서주석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수원과 인천가톨릭대학교 교수를 역임, 현재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총무와 신앙교리위원회 위원, 인천 작전동본당 주임으로 사목 중이다.


신교선 신부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14-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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