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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민 신부의 별별 이야기] (27)모자람의 영성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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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의 아버지는 스스로 잔소리가 많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 정도 잔소리도 하지 않는 부모가 어디 부모인가? 아들에게 하는 말은 잔소리가 아니라 자식을 위한 교육이며 그 안에는 자식을 향한 사랑이 있다고 말한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자식이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노력을 하지 않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가만히 방임하고 있을 부모가 어디 있겠는가?

요한의 아버지처럼 70대 후반의 마리아 자매도 아이들을 최선을 다해 키워왔다. 슬하에 두 아들과 딸을 두고 있는 마리아 자매는 자녀들이 모두 자신을 무시하고 상처를 주는 현실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마리아 자매는 최선을 다해 세 자녀를 교육했고 극진한 사랑으로 돌보았다. 그 결과 아들딸 모두 일류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서 지위와 명예를 얻으며 성공적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세 자녀가 자신을 대하는 말투나 행동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었다. 전화 통화를 하는 중에 아무것도 아닌 일로 어머니인 자신에게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내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물건을 부수는 등 폭력을 마다치 않는 자녀들로부터 상처를 받고 있었다. 하지만 사회적 지위가 있는 자녀들이라 어디다 하소연할 데도 없었다.

요한의 아버지와 마리아 자매는 세 가지 점에서 공통점이 있었다. 첫째는 두 사람 모두 자녀에게 최선으로 교육하고 온전하게 사랑을 베풀었다는 점이다. 자녀 교육에서는 더 이상의 노력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헌신한 분들이었다. 둘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 모두 자녀들과의 관계에서는 좌절을 느끼고 있었다. 두 가정의 자녀들은 모두 부모에게 공격적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요한은 아버지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 방식으로 응대했다. 즉 수동적 공격을 통해 아버지에게 자신의 감정을 전하고 있었다. 한편 마리아 자매의 자녀들은 매사에 짜증과 분노로 일관하면서 심지어 물리적 폭력과 같은 능동적 공격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고 있었다. 세 번째 공통점은 두 사람 모두 가정 교육에 최선을 다했을 뿐, 가정 교육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자식을 위한 사랑에 모든 것을 헌신한 부모가 자신의 사랑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상담을 진행해 감에 따라 자녀와의 관계 문제에서 요한의 아버지와 마리아 자매는 점차 차이를 보이기 시작했다. 요한의 아버지는 아들과의 관계가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했다. 반면 마리아 자매는 시간이 갈수록 오히려 자녀들과의 관계가 악화되고 있었다. 같은 문제를 지닌 두 사람이 각기 다른 방식의 결과로 이어진 이유가 무엇일까?

먼저 요한의 아버지는 아들의 문제가 결국 자신의 문제로부터 파생되었다는 것을 통찰하면서 아들과의 관계에 변화를 체험하기 시작했다. 아들에게 바라는 성공은 표면적으로 아들을 위한 욕구였지만, 그 내면에는 자신의 욕구와 강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인정할 수 있었다. 사실 아들이 진정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를 물어보거나 함께 대화해 본 적도 없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깨달았다. 결국, 아버지는 자신이 이루지 못한 사회적 경제적 성공에 대한 욕구를 아들의 성공을 통해 보상받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요한은 아버지와 달리 남이 부러워하는 삶이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고 싶은 학생이었다. 아들의 삶을 아버지의 삶에서 분리해 나가는 심리적 과정을 통해 아버지는 잔소리가 아닌 격려와 배려의 언어 패턴을 배워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요한은 서서히 아버지의 눈치를 벗어나 자기 주도적인 학습을 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와의 대화는 공부나 성공이 아닌 행복과 의미 있는 삶에 대한 이야기로 바뀌기 시작했다.

반면 마리아 자매는 최선을 다해 아이들을 사랑한 죄밖에 없는 자신이 왜 이런 고통을 받아야 하는지 괴로워했다. 실로 억울하고 답답하며 분노가 치밀어 오르지만, 이 감정을 일으킨 대상이 남도 아니고 바로 자기 아들딸이란 사실 때문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따라서 자신의 감정이 치유되도록 도움을 청할 것으로 예상했다. <계속>



<영성심리학자, 성필립보생태마을 부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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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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