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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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연출을 그분께 맡기는 것은 어떨까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4. 인생의 연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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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각자가 듣고 싶고, 보고 싶은 대로 믿고 기억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의 연출가를 그분에게 맡기는 것은 어떨까. pixabay 제공

 

 


영상을 보는 내내 박수와 웃음이 터져 나왔다. 사제들의 유쾌하고 재미있는 교리 이야기와 톡톡 튀는 말풍선과 자막, 사진과 이모티콘, 음향 효과까지 속도감 있는 전개로 몰입하게 해주었다.

“와, 신부님들 정말 입담 좋고 유머도 있으시네요.”

“아이들 눈높이에 딱 맞아요.”

“교리교육을 토크쇼의 형식으로 하니 몰입이 확 돼요.”

코로나 시기 교회에 못 오는 아이들을 위해 B수녀는 무언가를 해야 했다. 그래서 사제들을 게스트로 참여하게 하여 토크 형식으로 교리교육을 진행했다. B수녀는 연출, 각본, 기술에 편집까지 맡았다고 한다. 그러면서 한숨을 쉬며 흥분된 어조로 말했다. “영상 만들면서 죽는 줄 알았어요. 진짜 현장에서 신부님들 이야기하는 것 보면요. 재미없고 지루해서 미칠걸요. 몇 시간 촬영해서 10분으로 줄인 거예요.” 순간 입담을 뽐낸 출연자들은 작아지고, 연출가로서의 B수녀가 엄청 크게 다가왔다.

편집의 기본은 보여주고 싶은 것을 선택하는 것이다. 연출가의 관점에 따라 어떤 영상은 선택받고 또 버려진다. 지루하거나 재미없다 싶은 것은 과감하게 버린다. 어쩌면 나의 인생도 편집 영상과 많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인생 자체는 무편집이다. 부끄럽다고 그 부분만 싹둑 잘라 버릴 수도 없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서는 삭제와 수정, 그리고 순서를 바꾸는 편집과정이 이뤄진다. 무엇을 보이고 숨기고 싶은지 의식과 무의식이 자동으로 관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나 중심적으로 듣고 보면서 이해하고 해석하는 경우가 왕왕 있다. “난 분명히 말했어요!”, “난 못 들었어요.” 상대는 말했다고 하고 나는 못 들었다고 한다. 그쪽은 결국 “듣고도 안 들은 것”으로 결론을 내린다. 그리고 난 그쪽을 남을 판단이나 하는 무례한 사람으로 해석한다. 같은 상황에서 그쪽과 나의 각본은 달랐고, 편집도 연출도 자기중심적이었다. 많은 인간관계 갈등의 시작은 그렇게 시작되는 것 같다.

거대한 외부세상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는 없다. 대신 밖의 세상을 내 안에 가져와 자르고 수정하고 보충하면서 나만의 세상을 만들어낸다. 그럴 때 안정감이 느껴지고 편안하다. 우리에겐 무언가 통제하면서 힘을 느끼고 싶어 하는 욕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내가 가져온 세상은 내가 보고 싶고, 믿고 싶은 정보에 의해 만들어진 모조품 세상이기 때문이다.

전철을 타면서 저마다 손에 들린 스마트기기 속 영상을 보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 있다. ‘이들은 과연 무엇을 보고 있는 걸까?’ 대부분 보고 싶은 것을 선택해서 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유튜브 알고리즘에 의해 자신의 학습패턴이나 인터넷 검색패턴을 분석한 인공지능에게 맞춤형 서비스를 받고 있다.

결과적으론 보고 싶은 정보만 보게 된다. 그렇게 되면 결국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되는 ‘나 중심적 편향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사실 내 인생의 연출을 내가 하는 것 같지만, 나 중심적 인간을 인공지능이 부추기는지도 모른다.

내 인생의 연출가는 누구보다 나를 잘 알아야 한다. 내가 잘하고 못하는 것이 무엇인지, 어느 시점에서 나 중심에서 타인 중심으로 앵글이 옮겨가야 하는지 정확히 꿰뚫고 있어야 한다. 보여주기 싫다고 부끄럽다고 무작위로 자르지도 않는다. 지금 당장은 갈등과 고난의 연속이지만, 연출가는 반드시 이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어야 한다.

무엇보다 내가 인생 무대를 퇴장할 때 감사와 기쁨이 넘쳐야 한다. 그렇다면 연출가는 내가 아니다. 더욱이 과거의 흔적만을 분석해서 나의 취향에 맞는 서비스를 해주는 인공지능도 아니어야 한다. 나의 연출가는 마지막까지 나를 책임지고 돌보고 사랑해 줄 분, 바로 한 분뿐이다. 그리하여 마지막 내 인생 극이 끝날 때 엔딩 크레딧에 이런 글이 올라올 것이다.

“제 인생을 연출해 주신 주님, 감사드립니다. 저의 인생은 참으로 아름다웠고 행복했습니다.”



*** 영성이 묻는 안부 ***

잠자기 전, 침대에 누워 나의 하루를 영상으로 떠올려 보세요. 클로즈업이 아닌 롱테이크로, 편집이 아닌 무편집으로요. 혹시 버려진 컷이 무엇인지 찾아보고요. 실수하고 비난받은 장면들을 모아 봐요. 그리고 그것을 연민과 사랑으로 감상해요. 어쩌면 내 소중한 인생 컷은 내가 외면하고 싶은 선택받지 않은 영상에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어요. 버리고 싶은 부끄러운 순간들을 슬로우 모션으로 찬찬히 돌려봐요. 숨기고 싶은 그 영상이 내 인생을 빛나게 해 주는 최대의 인생 컷이 될 수 있으니까요.



김용은 수녀(제오르지아, 살레시오 수녀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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