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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이 아닌 본래의 ‘나’로 살아가는 사람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5. 파견된 자의 사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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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때로 다양한 얼굴을 지녀야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로 사는 사람은 하는 일 자체가 존재로서 수행하는 미션이 된다. pixabay 제공



우린 대부분 한두 개의 가면을 쓰고 산다. 역할에 따라 가면을 썼다 벗었다 하면서 말이다. 최근에는 ‘부캐’로 표현되는 멀티 페르소나가 자연스러운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모양새다. 본래의 나(본캐)는 어느 정도 숨기고 멀티 페르소나(부캐)를 앞세우기도 한다. 유명 연예인들의 부캐 활동은 자아 확장의 욕망을 부추기고 타인에게 비치는 페르소나에 더 관심을 기울이게 한다.

심리학자 에리히 프롬에 의하면 자아가 자기 자신을 시장에서 판매하기 좋게 내 걸린 어떤 상품으로 인식하는 것이라 한다. 「부의 노예」의 저자 로버트 라이시는 성공은 자신을 어떻게 잘 판매하느냐에 달려있기에 자신을 파는 일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일이 되었다고 했다. 누구나 메이커가 될 수 있는 세상이다. 그러니 자신의 페르소나를 재창조하여 판매하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다.



그런데 최근 TV 예능 프로그램에서 단 하나의 자아로 다양한 배역을 해낼 수 있다는 배우가 나타났다. 배우 김혜자의 말은 경이롭기까지 했다.

“나는 직업을 탤런트라고 쓰는 사람을 보면 너무 이상해요. 연기는 그냥 나에요.” 탤런트를 직업이라고 하면 자존심이 상하기까지 한단다. 연기는 그냥 숨 쉬는 것처럼 자기 자신이라는 것이다.

배우가 썼다가 벗었다 하는 가면을 페르소나라고 한다. 그러니까 배우는 대놓고 본래의 나를 숨겨도 된다. 그리고 다른 가면을 쓰고 그 사람처럼 연기한다. 하지만 김혜자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마치 ‘페르소나 그딴 거 없어! 나는 오로지 나야. 어떤 역할이든 그 사람은 그냥 나야’라고 하는 것 같다.

소녀 같은 미소를 지으며 뜨거운 열정을 말하는 그는 잠시 내가 잊고 있던 ‘나’에게 신비로운 활력을 넣어주었다. 방송에서의 리얼리티는 리얼하지 않다는 나의 믿음을 깬 유일한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나에게 김혜자는 참으로 리얼했다.

그는 책을 홍보하려고 나왔다고 했다. 그리고 진행자가 ‘주인공이 아니면 정말 안 하느냐’는 질문에도 조금도 망설임 없이 그렇다고 했다. 그런데 세속적이지도 오만해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가면이 아닌 본래의 ‘나’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남에게 보이는 대로인 사람”(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이었던 것이다.

나를 파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나로 사는 사람이 있다. 두 사람의 차이는 무엇일까? 내가 하는 일이 직업인지 아니면 그냥 내 존재 그 자체인지는 어떻게 구별할까?

연기는 자신 그 자체라고 고백한 김혜자에게 연기는 ‘미션’이었다. 라틴어 ‘Missio’에서 나온 파견이란 의미가 있다. 그러니까 그는 존재 자체가 파견된 자였다. 사명이고 임무이고 선교였다. 내가 나로서 글을 쓰고 방송을 하고 강의를 할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파견된 자로서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내가 사회적 기능을 수행하는 외적인 캐릭터로 일한다면 직업이 된다. 나를 파견하신 분의 사명에 부응하기보다는 나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이들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나로 사는 사람은 하는 일 자체가 존재로서 수행하는 미션이 된다.

“지금 행복하죠? 그러면 지금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을 생각해야 해요. 고통받는 사람들을요.” 김혜자가 진행자들에게 가르치듯 한 말이었지만 울림은 컸다. 그의 시선은 하늘에 있었고, 그가 하는 말은 자신의 삶이었기 때문이다.



영성이 묻는 안부



‘나는 누구일까?’ 가끔 이런 물음이 훅하고 올라올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아리고 외로운 자아가 황량한 사막 위에 홀로 서 있는 것 같아요. 때론 가까이 있던 사람도 낯설게 느껴지기도 하고요. 마치 한바탕 연극을 마치고 본래의 나로 돌아왔을 때의 어색함이라고나 할까요.

본래의 나로 살아가기 위해 가끔 물어보면 어떨까요? ‘나는 누구일까? 나는 어디로 가는 걸까?’

이 물음은 나는 어떤 존재로 살아가는가를 말합니다. 무엇보다 나를 묻고 나를 찾는 길은 하느님을 찾는 길이라고 생각해요. 시인 에드워드 영(Young, Edward)은 “우리는 원본으로 태어났는데 왜 복사본으로 죽어 가는지 모르겠다”고 한탄합니다.

현대를 살다 보면 하느님에게서 나온 나는 내가 아닌 나를 욕망하면서 변질되고 왜곡되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멈춰 물어야 합니다. ‘나는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김용은(제오르지아,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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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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