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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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아끼다 ‘지금’을 잃고 있지 않는가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6. 시간 절약에 애쓰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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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인들에게 바쁨은 상황이 아니라 습관이 됐다. 분주한 사람들 대열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지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출처=pixabay



“한 시간은 기다려야겠는데요.”

이 말을 툭 던지고 K는 가버렸다. ‘뭐 1시간이나 기다리라고?’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에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없던 일들이 머릿속에 수북이 쌓이는 느낌이었다. 그러면서 잠깐 드는 생각, ‘나도 바쁘지 않아도 바빠야 하는 사람들 대열 속에 합류된 걸까?’ 그렇다. 나도 모르게 바쁨은 상황이 아닌 습관이 되어가고 있었다.

아침 출근 시간 지하철 개찰구에 들어서면 누군가는 늘 허겁지겁 찍고 뛰어들어간다. 그러면 뒷사람도 서둘러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바쁨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일까? 나의 발걸음도 빨라진다. 지하철 도착 안내는 시간을 절약하고 기다리는 불안감을 줄여주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안 오면 안 온다고 오면 또 온다고 전광판을 보고 또 본다. 오히려 더 조급하고 불안해진 것이다. 전철이 들어서면 마치 마지막 열차를 타듯이 치열하게 비집고 들어선다. 그러는 사이 열차는 더 지연된다.

이렇듯 우리는 매 순간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애쓰지만 아낀 시간은 다 어디로 갔을까? 시간을 아끼기 위해 조금만 걸어도 갈 수 있는 거리를 버스나 택시를 탄다. 계단을 직접 걸어 오르고 내리기보다는 엘리베이터를 탄다. 외식을 하거나 주문해서 식사한다. 집 안 청소와 정리까지 외주를 준다. 그렇게 우린 몸의 수고로움을 덜고 시간을 아끼려고 바동댄다.

그렇기 위해 또 돈을 벌어야 한다. 어찌 보면 귀찮은 일을 피하기 위해 그보다 더 힘든 일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몸의 안락을 위한 이러한 선택이 더 빨리 몸을 늙게 하는데 말이다. 사실 몇 분 아끼려고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스마트폰 터치 한번, 스크롤 몇 번 하다 보면 몇 배의 시간이 뭉텅뭉텅 간다. 감각의 즐거움을 얻기 위한 이런 활동이 뇌의 노화를 재촉한다. 이상한 일이다. 즐거운 것들로 채우려 하지만 공허감은 더 커지니 말이다.

미하엘 엔데의 「모모」에서 시간을 훔치는 도둑 회색 일당은 “시간은 소중하다!”고 외친다. 그러니 시간을 절약하라고 한다. 그럴듯한 말이다. 사람들은 시간을 절약하다 보면 마치 더 많은 시간을 돌려받을 것이라고 착각한다. 그런데 시간을 아끼다 보니 시계의 숫자에 집착하면서 하기 싫은 일은 후딱 해치우고 힘든 일은 기계에 의존하거나 외주를 준다. 재미없는 일은 건너뛴다. 그러면서 매일 시간을 절약하지만, 더 바쁘다. 바쁘다 보니 시간이 또 부족하다.

「모모」의 지혜로운 노인 호라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빛을 보기 위해 눈이 있고, 소리를 듣기 위해 귀가 있듯이 너희들은 시간을 느끼기 위해 가슴을 갖고 있단다. 가슴으로 느끼지 않은 시간은 모두 없어져 버리지.… 이 세상에는 쿵쿵 뛰고 있는데도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눈멀고 귀먹은 가슴들이 수두룩하단다.”

바쁘게 사는 사람들의 특징은 시계의 숫자에 집착한다. 하지만 마음 시계를 보는 사람은 가슴으로 시간을 느낀다. 바쁜 사람은 ‘일’ 자체에 빠져 ‘지금’이란 시간에 머물지 못한다. 어쩌면 호라 박사의 말처럼 주어진 시간을 아끼다가 ‘지금’을 잃고 사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모모」에서 모모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경청하는 재주만으로도 사람들의 고민을 사라지게 한다. 그리고 그들 자신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해준다. 그러면서 모모는 “시간은 삶이며 삶은 우리 마음속에 있다”고 말해준다.



영성이 묻는 안부


시계를 보며 초조할 때 깊은 심호흡을 하고 마음속 시계를 바라봐요. 바쁨이 상황이 아닌 습관이 아닌지도 물어보고요. 분주한 마음의 패턴에서 벗어나 오감으로 소통하고 버틸 수 있는 시간을 보내면 어떨까요?

자연과 함께 머물러요. 자연이 있는 그림만 봐도 행복의 뇌가 반응한다고 해요. 무엇보다 지금이란 시간이 천천히 흐르게 해줘요. 그리고 하루를 시작하기 전과 마무리하면서 잠깐 멈춰 기도해요. 그냥 주님의 현존에 머물기만 하면 돼요. 편안하게요.

하느님의 시간인 ‘지금’을 사는 최고의 시간입니다. 또 하나 있어요. 쉬는 날에 슬로우 시간을 가져요. 빨리 늙는 이유 중에 하나는 시간을 듬성듬성 건너뛰기 때문인데요. 촘촘하게 시간을 보내면 느리게 나이들 수 있답니다. 슬로우 시간을 가지려면 최대한 텔레비전이나 스마트폰을 멀리하고 아날로그적 삶의 방식으로 보내요.

독서와 산책 그리고 주변 정리와 요리 등으로 너무 바쁘지 않게 뒹굴뒹굴 놀고먹는다는 그런 느낌도 괜찮아요. 그러면 시간이 가슴으로 느껴져요. 마음의 시계를 바라보는 습관이 싹을 틔우는 씨앗처럼 자랄 겁니다.





김용은(제오르지아,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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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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