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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7주일- 원수는 이웃의 또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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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마태 5,44)



사제는 직무를 통해 하느님의 자비를 보여줍니다. 하지만 저는 일상에서 용서를 비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저로 인해 상처를 입고 힘들어하는 분들이 있는 것입니다. 오해에서 비롯된 것도 있지만, 저의 못난 탓도 있습니다. 본당에 있을 때, 교우들끼리의 다툼이나 어려움에도 일정 부분 저의 책임이 있음을 발견하고 놀랐습니다. 권한이 크면 책임도 큰가 봅니다. 용서해 주는 입장이 아니라, 용서를 빌면서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1. 원수가 누구인가? 왜 용서해야 하는가?

예수님에게 원수란 단어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용서하고 화해해야 할 이웃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요. 원수를 구체적인 한 인간으로 떠올려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전혀 모르는 어떤 이가 아닙니다. 잘 아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전에는 사랑했던 사람일 가능성도 큽니다.

어느 자매의 고백입니다. 모든 사람을 용서할 수 있지만, 그 사람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다른 이가 아닌 상당히 오래전에 죽은 그분의 남편이었습니다. 사목하는 가운데 이런 분들을 더러 만납니다. 얼마나 원망이 깊었으면 그럴까 싶습니다. 죽은 이는 하늘에서 평화를 누리고 있을 터인데, 자기 가슴을 후벼 파는 형국이라 안타깝습니다. 가족이나 친구 사이, 뭔가를 함께했던 동료들이 원수가 되어 불행하게 지내는 경우를 적잖게 보게 됩니다. 원수라 해서 너무 악마화할 필요는 없습니다. 마음을 바꿔 먹으면 다시 형제가 되고 친구가 될 수 있습니다.

좋은 친구 한 사람만 있어도 성공한 인생이라 합니다. 그런데 친구 열 명보다 원수 한 명을 만들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은 이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 해도 한 사람과 원수가 되어 살면 인생은 죽을 맛입니다. 용서는 자신을 위해서 해야 합니다. 원수를 원수로 갚는 것보다 은혜로 갚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근원적으로 원수 관계를 청산하는 데는 이것만큼 확실한 해결책은 없을 것입니다.



2. 어떻게 원수를 사랑할 것인가?

“악인에게 맞서지 마라.”(39절) ‘옳더라도 사소한 것이면 양보해라.’ ‘길에 대한 권리 놓고 개와 다투다 물리느니, 그냥 개에게 양보하는 게 낫다’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개와 싸우면 이전투구(泥田鬪狗)가 되고, 악마와 싸우면 악마가 될 수 있습니다. 악랄한 상대 수법에 대항하다 보면 나도 악랄하게 되기가 십상입니다. 이성적인 대처가 필요합니다. 상대가 싫어하고 두려워하는 행동을 멈추는 것은 지혜입니다. 나의 하느님이지만 너의 하느님, 내 원수의 하느님이시기도 합니다. 악인이나 불의한 이에게도 공정해야 할 이유입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주신다.”(45절)

북한과의 관계에서도, 여야 대치 상황에서도 그렇습니다. 정치권에서 북한을 두고, 우리의 주적(主敵)이 누구냐로 따지는 걸 보았습니다. 북한에 두고 원수나, 주적(主敵)이란 표현은 맞지 않습니다. 지금은 적대관계에 있지만, 언젠가는 화해해야 할 형제입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이런 일은 허다합니다. 형제는 꼭 좋은 친구여야 할 필요도 없나 봅니다. 돌봐주고 함께 가야 할, 말 그대로 형제일 뿐입니다.

북한이 형제라면 일본은 이웃입니다. 해를 끼친 원수지만, 더불어 살아가야 할 이웃입니다.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잊어버리고 없던 일로 치부하는 것이 용서가 아닙니다. 물론 힘이 있어야 용서합니다. 군사력이라기보다 김구 선생이 말씀하신 문화강국이 진짜 힘일 것입니다. 하여튼 용서할 마음의 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적어도 기도는 할 수 있겠습니다. “주님! 그놈들 정말 용서가 안 됩니다. 그래도 기도합니다. 화해와 사랑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지혜와 용기를 주소서.”



서춘배 신부(의정부교구 병원사목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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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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