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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처럼 보이는 가짜,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12. 가짜와 진짜의 구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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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많은 가짜뉴스에 여과없이 노출된 채 살고 있다. 때론 스스로 인지적 오류를 범하고 있진 않은지 돌아봐야 한다. pixabay


잊을 만하면 가짜뉴스를 보내오는 사람이 있다. 그것도 오래전에 유포된 황당한 정보다. 그는 가짜와 진짜를 구분하지 못하는 지력이 떨어지는 사람일까? 그렇지 않다. 그는 지혜롭고 똑똑한 지식인이다. 사실 가짜뉴스를 믿거나 퍼트리는 사람이 인지적인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다. 똑똑하다고 거짓에 속지 않는다고 할 수는 없다. 명문대 출신의 고학력자들이 의외로 사이비종교에 빠지는 것만 봐도 그렇다.

가짜와 진짜의 구별은 머리보다 감정으로 하는 경향이 있다. 우린 본능적으로 내가 선택한 것이 옳다고 생각하고 믿고 싶어 한다. 자신의 신념과 가치에 일치하는 정보를 편식하고 정당화하려고 한다. 결국, 알고리즘에 의한 정보 편식은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더 믿게 하면서 나와 다른 것을 배척하게 만든다. 정보는 넘치지만, 생각은 빈곤해지면서 인지에 오류가 생기는 이유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하고 그다음에는 의심하지만 되풀이하면 결국에는 믿게 된다.” 히틀러를 ‘신’과 같은 존재로 만들어낸 천재, 바로 괴벨스의 말이다. 대중매체를 이용해 사람들을 선동하고, 유다인 학살과 세계전쟁으로 몰고 간 히틀러의 뒤에는 바로 괴벨스가 있었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나에게 딱 한 문장만 달라.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 섬뜩한 말이다. 그는 99가지의 거짓과 1개의 진실의 적절한 배합은 100의 거짓보다 더 큰 효과를 낸다는 소름 끼치는 말도 토해냈다. 대부분의 가짜뉴스는 선동적이고 자극적이다. 대중의 주목을 받기 쉽고 또 빠르게 퍼져나간다. 특히 사람들의 분노나 공포감정을 자극하면 더 강하게 기억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반복적으로 보고 듣는 정보에 대한 익숙함은 그 어떤 메시지보다 강하다. 그리고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뇌는 나의 신념을 방해하는 정보를 배척하게 한다. 괴벨스의 말처럼 거짓이라 하더라도 자꾸 반복적으로 보고 듣게 되면 사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점점 주변에 많아지면 그것은 진실이 되고 만다.

매일 매 순간 디지털정보의 바다 위에 살아가는 우리는 뉴스인지 예능인지 모를 파도에 허우적대며 가십과 루머를 퍼트린다. 너무 많은 정보에 노출되니 산만해지고 집중력도 떨어진다. 식별하고 판단할 마음의 여유가 없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인지적 구두쇠가 되어 힘들게 논리적인 잣대로 꼼꼼하게 식별하기보다 가능한 단순화시켜 쉽게 결론을 도출하려고 한다.

점점 독해지는 신념과 이념의 양극화 현상을 보노라면 가끔 무섭게 느껴질 때가 있다. 옳고 그름, 선과 악, 좌와 우, 진보와 보수라는 이분법이란 틀에 갇혀 서로에게 총을 겨누며 마치 전쟁을 하고 있는 느낌이다. 매일 쏟아지는 정보는 누군가를 향해 끊임없이 분노와 혐오를 쏟아내게 한다. 이런 분노의 감정은 옳고 그름을 식별해주는 전두엽의 스위치를 꺼버리고 사실을 아주 단순화시키면서 인지적인 오류를 범하게 한다. 무엇이 진실인지에 대한 관심보다 어떤 것이 나의 신념과 일치하는지가 더 중요해진다.

같아 보이나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의미를 지닌 ‘사이비’란 말이 공자의 말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비슷하나 아닌 것을 미워한다. 가라지를 미워하는 것은 벼 이삭을 어지럽힐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공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어떻게 말씀하셨을까.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 수확 때에 내가 일꾼들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태워 버리고 밀은 내 곳간으로 모아들이라고 하겠다.”(마태 13:30)

예수님은 미워하는 마음이 자칫 벼마저 뽑아버릴 수 있다는 것을 염려하신 것일까. 아니면 우리의 식별력에 의문을 품으셨던 것일까. ‘내가 벼고 너는 가라지’라는 우리의 확고한 신념과 고집에 대해 걱정하신 것은 아니었을까 싶다. 남을 가라지라고 함부로 뽑다가 나 자신마저 잃을 수 있다는 것도.


영성이 묻는 안부

진짜처럼 보이는 가짜,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정보의 출처를 확인하고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리고 언제 작성되었는지는 기본적으로 확인해야겠지요. 무엇보다 우리의 마음과 감정을 바라보는 여유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믿는 신념이 분노와 혐오감정을 일으키지는 않는지. 그러면 복잡한 정보를 아주 단순하게 만들어 거짓을 바로잡을 수 없게 되지요. 특히 정치적 신념 속에 갇히면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오고 상대방을 배척하고 비난하게 돼요. 요즘 사이비종교로 인하여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정보 편식으로 누군가를 미워하고 혐오한다면 우리 역시 정치적 광신도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김용은 수녀(제오르지아, 살레시오 수녀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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