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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12.어린이집 아기들이 출현하던 날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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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시내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던 후배가 부모님의 옛 집을 허물고 난 자리에 주말농장처럼 유기농 쑥 재배를 시작했다. 쑥씨를 뿌리고 남은 땅에는 고구마, 땅콩, 수박을 심어 어린이들의 체험학습장으로 이용한다. 두 살배기 아기부터 다섯 살짜리까지 노란 차에 타고 마을 공동 주차장에 내리던 날, 온 동네 할머니들이 신기해서 구경을 나오셨다. 마을에서 이런 아기들을 못 본 지가 수십 년, 이 마을에서 태어난 마지막 인물이 1997년생이다. 꼬미마을을 고향으로 여길 최후의 주자인 것이다. 이 아름다운 곳을 기억할 사람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 가슴 한켠을 텅 비게 만든다.

오늘은 ??어린이집에서 3세에서 5세 유아들이 감자 캐러 오는 날, 감자를 캐러 가기 전에 잠시 우리 집, 관솔치유의 집을 방문하기로 되어 있었다. 무엇으로 아기들을 환영할까? 우선 화초와 꽃으로 장식한 나무 게시판을 만들고, 그동안 배운 캘리그라피로 “환영합니다. ??어린이집 어린이 여러분”을 써서 마당 입구에 세웠다. 후배에게 아이들과 선생님들의 명단을 받아서 집 뒤에 있는 작은 대나무를 잘라 달님반 ???, 햇님반 ???, 별님반 ??? 이름을 적어서 막대기에 조롱조롱 걸었다. 간식으로 무엇을 할까? 직접 따서 간 복분자 주스를 만들어 두었다. 마당에는 전시관처럼 원형을 만들어 동물 종류의 관솔 작품들만 골라서 둥근 나무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마당 한가운데는 바다에서 온 조개껍데기, 소라껍데기를 한 바구니 담아 장식해 두었다. 누군가를 기다리고 환영하는 것은 이렇게 기쁜 일이다.

멀리서부터 재잘재잘 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둘씩 손을 잡고 집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저희 아버지를 보고 배꼽 인사를 하며 “안녕하세요, 할아버지” 하는데,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어찌나 귀엽던지. 대나무 이름표를 얼른 찾는 친구도 있고, 전혀 관심이 없는 친구도 있었다. 선생님들이 아기들의 이름을 연신 부르며 다칠까 봐 뭐라고 뭐라고 이야기를 하지만, 아이들은 살판났다. “선생님, 이것은 뭐예요? 저것은 뭐예요? 이것은 왜 이렇게 생겼어요? 얘는 왜 누워있어요?” 한바탕 소란이 끝나고, 선생님이 “애들아, 간식 먹자” 하자, 쪼르르 모두가 평상 위로 올라앉았다. 평상 아래 신발들도 가지런히 놓여 신발끼리도 서로 다정하게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기들은 각자가 메고 온 가방을 열어 간식을 꺼내기 시작했다. 준비해 둔 복분자 주스를 주었더니, 한 아이가 “왜 아무 맛이 없어요?” “시큼해서 싫어요” “이게 무슨 맛이에요?” 한다. 순간, 당황스러웠다. 

햇님반이 골목에 등장하자, 선생님은 “별님반 어린이 여러분, 이제 떠날 준비 하세요” 하니 자연스럽게 짝을 찾아 손을 잡기 시작했다. 할아버지는 준비해 둔 선물을 하나씩 하나씩 아이들 목에 걸어주셨다. 관솔로 만든 목걸이이다. “어린이 여러분, 향기를 맡아보세요.” 몇몇이 대답한다. “향기 좋아요” “무슨 향기일까요?” “몰라요” “소나무 향기예요. 소나무 알아요?” 이구동성으로 “네, 알아요” 외친다. 오늘만큼은 사람 소리 들리는 마을이다. 이 아가들이 자라서 이 마을을 기억해 낼 수 있을까? 그래도 아가들의 몸은 기억할 것이라 믿는다. 봄이면 감자 캐러, 여름이면 수박 먹으러, 가을이면 고구마 캐러 오는 아기들이 있는 한, 마을은 웃음꽃이 피고, 아주 젊고 싱싱하고 꿈이 있는 푸른 마을이 된다. 아가들아, 예수님처럼 자라다오.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2,40)
 

김광숙 노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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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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