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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13. 효자상/사회생태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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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창장

꼬미마을 입구에 평양 조씨 문중 효자비가 있다. 1929년에 고령군수로부터 받은 효자상을 1991년도에 그 아드님이 아버지를 기리기 위해 세운 비석이다. 놀라운 것은 비석을 세울 때 나누어준 비문과 효자상 사본을 그 후손들도 가지고 있지 않는 것을 마을 노인회장님께서 30여 년간 고이 간직하고 계셨던 것이다.

1937년생이신 노인회장님은 본인의 부친으로부터 상장을 받은 조희송 어르신에 대한 이야기를 종종 전해 들었다고 하셨다. 이 작은 마을에도 이렇게 훌륭한 효자가 살고 계셨구나 싶어서 마음이 뿌듯했다.

반가운 마음에 상장을 들고 빽빽하게 씌어진 한자(漢字)를 떠듬떠듬 읽어내려가노라니, 그 뜻을 도대체 알 수가 없었다. 간간이 한글로 조사가 끼어 있어서 반갑기도 했지만, 뜻을 이해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전혀 알 수 없는 몇몇 한자들과 해석 앞에서 잠시 나의 실력을 탓했다. 효자비문은 내용을 더 알 길이 없었다. 이 일을 어떡하나? 비석도 새롭게 단장을 하고 안내판도 세워서 마을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랑하려면 상장과 비문이 무슨 내용인지를 알아야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지 않은가? 참으로 난감하다.

성령의 빛처럼 뇌리를 스치는 분이 계셨다. 이분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독일에서 중국사를 전공하신 역사학자 장정란 교수님이다. 현재 한국AFI 역사서를 편찬하고 계신다. 교수님께서 기꺼이 풀이를 해주시겠다고 했다. 해석한 내용을 보고 깜짝 놀랐다. 기존에 우리가 봐온 상투적인 표창장의 내용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심으로 효자를 칭송하는 상이구나 싶었다. 다름 아닌 행정기관에서 준 상장의 내용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는가? 일제강점기에 받은 상이라 종칠위 훈칠등이라는 일본식 계급이 있어서 약간 불편한 마음도 있지만, 그 내용만은 높이 사고 싶었다. 오늘날 우리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여겨져 전문을 옮겨본다.

“‘표창장’, 고령군 개진면 인안동 126번지 조희송 1886년 5월 25일생. 본인은 본래 품성이 따뜻하고 공손하고 독실하며 근검을 힘써 실천해 왔다. 어려서부터 효심이 지극해서 먹을 것이 생기면 자신이 먹지 않고 반드시 부모에게 공양하였다. 칠 년 전부터 홀아비 부친이 신경마비에 걸려 결국 반신불수가 되어서 움직임이 자유롭지 못하고 말하기 역시 불가능하였다가 마침내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칠 년의 긴 세월을 병석에 누워 지냈으나 조금만치의 귀찮은 기색도 없이 지극한 정성으로 병구완을 하였다. 밤낮을 불문하고 대소변을 제 손으로 치우며 잠시라도 딴 사람에게 맡기지 않았다. 가세가 가난했지만 병든 아버지가 좋아하는 음식은 반드시 공양해서 칠 년을 하루같이 보냈다. 부친이 병이 든 이래로 이틀간 출타한 일이 없고, 동생과 처자가 있음에도 야간의 간호를 안심할 수 없다하며 자신이 지성으로 병구완하니 모든 이에게 모범이라 일컬을 수 있겠다. 이에 금일봉을 수여하며 이 사람을 표창한다. 1929년 3월. 고령군수 종칠위 훈칠등 김진희.”

효자상과 비문을 PDF 파일로 정리하고 해석과 함께 현재의 비석도 사진을 찍어 파일로 만들어 후손들에게 전달했다. 그들은 손자, 손녀도 하지 못하는 일을 해줬다고 많이 고마워했다. 연로하신 부모들이 어쩌면 당연한 듯 요양원에서 일생을 마치는 요즈음, 이 효자를 기억하며 부모에 대한 사랑을 키워나가길 다짐해 본다. “주님을 경외하는 이는 아버지를 공경하고 자신을 낳아 준 부모를 상전처럼 섬긴다.”(집회 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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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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