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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숙 노엘라의 생명의 빛을 찾아서] 31. 낙산서원 / 사회생태

김광숙 노엘라(국제가톨릭형제회 AF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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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 내비게이션에서 인안2리를 검색하니 낙산서원이 등장했다. ‘여기가 어디지?’ 귀향하기 전까지는 낙산서원(洛山書院)이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 꼬미 마을에 서원이 있다는 말인가?

서원의 위치를 보니 주민들이 성산배씨(星山裵氏) 문중 재실이라고 불렀던 곳이었다. 소중한 문화재를 소장하고 있는 마을임을 알고는 문화마을이 된듯해서 어깨가 으쓱해졌다. 한편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약간 부끄럽기도 했다.

며칠 후, 낙산서원을 찾았다. 예나 지금이나 같은 현판이었으나, 재실로만 기억했지 낙산서원으로는 기억되지 않았다. 자세한 내력을 알고 싶어서 후손을 찾아갔더니 2019년에 주간 고령신문에 난 ‘고령지역 세거성씨(世居姓氏) 연원을 찾아서’란 기획 연재에 실린 성산배씨 편을 보여줬다. 문중사이긴 하지만, 마을 역사와 연결돼 있어서 주민이지만 후손만큼이나 자긍심이 생겼다. 지방문화재 등록은 아직 안 되어 있지만, 우선 마을 문화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기를 바란다.

낙산서원은 조선 중기 학자 배신(裴紳, 1520~1573)을 배향한 서원이다. 남명(南冥) 조식(曺植)으로부터 수학하고 후에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배웠다. 스승인 조식이 죽자 조정의 명령으로 천거되어 ‘남명선생언행록’을 지어 올렸다. 그를 남명과 퇴계의 회통자라고 한다. 배신은 후학 양성을 위해 서원을 건립했고, 사후에 현풍 도동서원 별사에 봉향됐다가 1952년 꼬미 마을에 낙산서원이 건립되면서 이곳에 모셔졌다. 저서로 「낙천집」이 있다. 낙산서원에는 강당인 주경당(主敬堂)과 사당인 경현사(景賢詞)가 있다. 성산배씨 낙천공파 종중에서 향사를 지내던 곳이다.(디지털고령문화대전 참고)

지난해 고향 방문의 날 행사를 위해 ‘추억 사진전’을 열고자 집집이 앨범을 찾아보았더니, 아이들이나 어른들의 사진 속에 가장 많이 등장한 배경이 낙산서원이었다. 산골 마을에서 그나마 가장 특이한 공간이었다. 마을보다 약간 높은 산비탈에 있어서 마을 전경을 다 볼 수 있다. 케노시스(Kenosis) 공부하는 팀이 꼬미 마을을 방문했을 때, 낙산서원에 가본 후에 이 장소가 너무 마음에 든다고 하였다. 서원 앞마당에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만 마련한다면 쉼과 회복의 장이 되고, 마을의 명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2021년 마을 가꾸기 사업에 힘입어 배씨 문중도 서원을 정비하기 시작하였다. 서원의 방문을 바꾸고, 마루 도색도 마쳤다. 머물고 싶고, 찾고 싶은 서원 분위기가 되려면 아직 갖추어야 할 몇 가지가 부족하다. 성산배씨 후손들에게 기대를 걸어본다. 서원까지 가는 길목을 정비하는 일과 이정표도 필요하다. 일손이 없는 시골에서 정기적으로 청소하고 정원관리도 큰 과제이다. 하지만 꿈을 꾸어본다. 지방문화재로 등록되고, 서원의 원래 기능을 찾아 평생학습의 장이 되고, 쉼과 회복의 공간이 되는 그 날이 오기를….

꼬미 마을은 교육열이 높은 마을로 이웃마을에 소문이 나 있다. 배움이 결실을 맺는 그날을 희망한다. 출향인들이 고향에 삶의 터전을 잡고, 그동안 배운 지식과 삶의 지혜를 모아, 낙산서원처럼 마을 곳곳의 역사와 문화를 되살려내고, 자연과 사람이 함께 상생하는 공동체 정신이 살아 숨 쉬는 마을을 만들어 가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지혜로운 사람은 자기 백성을 교육시키고 그의 지식은 믿을 만한 결실을 맺는다.”(집회 3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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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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