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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의 성인] 성 루이지 오리오네 (3월 12일)

1872~1940년 이탈리아 출생 및 선종. 천주 섭리의 아들 수도회 설립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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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지 오리오네 성인. 사진=굿뉴스




루이지 오리오네 성인은 이탈리아 토르토나교구에 속한 폰테쿠로네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1889년 신학교에 들어간 오리오네는 공동선을 위해 성 마르지아노회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회원이 되어 이웃을 돕는 데 헌신했습니다.

오리오네는 1892년 토르토나의 소년들에게 그리스도인 교육을 제공하는 첫 경당을 열었고, 이듬해에는 가난한 소년들을 위한 기숙학교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1895년 사제품을 받았습니다. 이후 파비아의 모르니코 로사나와 시칠리아의 노토, 산레모와 로마 등지에 새로운 기숙학교들을 연이어 열었습니다. 이 학교들을 중심으로 신학생과 초기 천주 섭리의 작은 사업회 핵심 사제들을 양성했습니다. 1899년에는 천주 섭리의 은수자회를 설립, 4년 뒤 토르토나교구 주교로부터 천주 섭리의 작은 사업회 남성 모임이었던 천주 섭리의 아들 수도회에 대한 교회법적 승인을 받았습니다. 1944년에는 교황청 인가를 받고 1954년 최종 승인을 얻었습니다.

천주 섭리의 아들 수도회 설립 목적은 자선 활동을 통해 가난한 사람을 비롯한 모든 이를 교회와 교황에게로 인도하는 데 협력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교황에 대한 충성’이라는 특별한 네 번째 서원을 발했습니다. 1904년에는 갈라진 교회의 일치를 이루기 위한 활동이 추가됐습니다. 1908년 레기오와 메시나, 1915년 마르시카 지역에서 발생한 지진 희생자들을 활발히 도왔는데, 이에 성 비오 10세 교황은 3년 동안 오리오네를 메시나교구 총대리로 임명했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중에는 고통받고 버림받은 이들을 위한 설교단인 ‘작은 코톨렌고’를 만들었습니다. 이는 주로 대도시 변두리 지역에 설립되었으며, 신앙과 문명의 참된 등대인 그리스도와 교회를 선포하는 설교단으로서 활동했습니다.

오리오네의 선교사적 열정은 브라질에 첫 선교단을 파견한 1913년에 이미 드러났습니다. 이는 아르헨티나와 우루과이·팔레스티나·폴란드·로도스 섬·미국·영국·알바니아 등지로 확대해 나갔습니다. 교황과 교황청으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아 교회 내부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상처받은 이들을 치유하고, 여러 문제를 처리하는 비밀스러운 임무를 위임받아 수행하기도 했습니다.

1940년 겨울, 오리오네는 건강에 이상이 생겨 치료차 산레모의 수도원으로 갔지만, 얼마 후 자신이 설립한 수도회 사제들 곁에서 선종했습니다. 유해는 안전한 보호자이신 성모성당 지하에 모셔졌고, 1965년 첫 발굴 때에도 부패하지 않은 모습으로 발견되었습니다. 오리오네는 1980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4년 성인품에 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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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4-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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