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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처음의 그 사랑을 되찾아라

김은영 수녀(춘천교구 솔모루이주사목센터 선한다문화가정지원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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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 포천에서 이주민들과 함께 한 시간이 어느덧 8년이 다 돼간다.

 지난 8년 동안 한 번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마음 편히 쉬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주노동자들과 결혼이주여성들은 무슨 일이 생기면 밤이건 휴일이건 가리지 않고 전화를 하기 때문이다.

 사장에게 폭행을 당해 잔뜩 겁을 먹고 전화하는 이주노동자들, 밤늦게 운전하다 사고를 내고 통역을 해 달라고 급히 부르는 이들…. 그들이 나를 찾는 이유를 너무 잘 알고, 얼마나 다급한지 알기에 바로 달려간다.

 한국어를 잘 하지 못하는 이주민들은 난처한 일이 생겨도 스스로 해결하기 힘들다. 그래서 아기가 엄마를 찾듯 나를 찾는다. 그들의 일을 해결해주기 위해 희생을 감수해야 했다.

 나는 공동체생활과 기도생활을 기본으로 삼는 수도자다. 수도자가 밤낮 없이 사도직 활동에 투신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이주민들을 돌보면서 오랫동안 해왔던 수도생활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나는 특수사도직을 하는 수녀로서 이주민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야 했다. 내게는 새로운 도전이자 과제였고, 이 과제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채 남아있다.

 요즘은 새로운 과제가 하나 더 생겼다. 도움을 청하는 이주민들이 있으면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지체 없이 달려갔던 내가 이제 머리로 먼저 생각을 하는 습관이 생겼다.

 얼마 전 시댁과의 갈등으로 이혼 위기에 처한 결혼이주여성이 도움을 요청했다. 예전 같으면 연민으로 앞뒤 재지 않고 달려갔겠지만 이제는 머리로 먼저 따지고 상황을 판단했다. 주위에서 전해들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왜 그런 상황이 벌어졌는지 먼저 파악하고, 결혼이민여성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방법을 조언하는 것으로 그쳤다.

 어느 날 이주민행사를 마칠 즈음 술이 잔뜩 취한 자매가 바쁘게 움직이는 나를 보고는 혀 꼬부라진 소리로 "수녀님, 그건 아니지"하고 핀잔을 줬다. 마치 주님의 천사가 내게 말씀하신 것 같았다. `그건 아니다`는 말이 마음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마치 주님이 "율리아나야, 이제 좀 쉬면서 내게 줬던 그 사랑을 기억하고 되찾아라"하고 말씀하신 것 같았다. 이제는 주님께 모든 것을 의탁하며 부끄러움을 잊고 다시 처음의 그 사랑을 되찾으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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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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