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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섬긴다" 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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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수사(사랑의 선교 수사회)
 
   수도원의 아침 기상시각은 5시다. 온종일 분주하게 지내다 저녁기도를 마치고 7시에 저녁을 먹고 나면 사실상 그날 일과는 끝난다. 시간표에 익숙한 삶이지만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함께 살다 보니 돌발상황이 간혹 발생하기도 한다. 오늘이 그런 날이었다.

 저녁식사를 하려는데 침대 한쪽 편에서 심상치 않은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선천성 지병으로 고생하는 장애우 형제가 나이가 들어가면서 신체기능이 점점 약해지고 있는데, 오늘 저녁 통증이 극에 달한 모양이다. 밥이 제대로 넘어갈 리 없다. 상의 끝에 그 형제를 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저녁나절 응급실은 늘 초만원이다. 접수하고 응급진단 받는 데만도 시간이 꽤 걸렸다.

 전공의를 기다리려면 인내가 필요하다. 이럴 때는 으레 가방에서 책 한 권을 꺼낸다. 새벽녘이 될 때쯤 입원 여부가 결정되기에 그 한밤을 새는 데는 독서가 제격이다. 인생은 기다림의 연속이라 하지만 내가 아픈 이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은 기다리는 것뿐이다. 아니 조금 더 깊게 말하면 함께 있는 것뿐이다.

 병원 응급실은 많은 것을 경험하고 생각하게 하지만 특별히 난 수도생활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기간이 정해지지 않은 섬김의 삶, 가난한 이들과 한생을 함께 가는 특별한 삶이다. 때론 쉬고 싶기도 하고, 몸이 아플 때는 짜증이 먼저 날 수도 있다. 그러나 오늘처럼 하룻밤을 꼬박 새며 삶을 돌아보는 특혜가 주어질 때면 성소 앞에 초연해진다.

 요즘 `섬긴다`는 말이 무척 많이 들리고 있다. 정치인들도 너나없이 선택하는 용어가 섬김인데, 과연 무엇을 섬김이라고 할 수 있을까. 난 섬김을 관계성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깊이 관계되는 것` 그렇게 정의 내리고 싶다.

 직접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생텍쥐페리가 「어린왕자」를 통해 잘 보여주었다. 서로 길들여지면 서로가 필요하게 되고, 서로가 필요하다는 관계 앞에 소위 말하는 인권이니 소유니 하는 문제는 고개를 숙인다. 우리 공동체에는 아직 고용 직원이 없다. 아직은 수사들이 직접 섬김을 실천하고 있다.

 인간사 안에서 어찌 섭섭한 것, 아쉬운 것이 없겠는가마는 그래도 장애우 형제들이 수사들을 대하고 의지하는 정도는 우리 생각 이상이다.

 남남으로 만나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맺어진 관계, 어떤 사람은 그 인연이 서른 해를 넘긴 이도 있다. 몸 안의 소소한 상처까지 우리는 안다. 긴 인내와 받아들임이 무엇인지도 서로 배웠다. 그리고 지금도 인간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서로 내어주는 희생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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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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