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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목욕탕" 사도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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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민 수사(사랑의 선교 수사회)
 

  화요일과 금요일 오후가 되면 노숙인들이 수도원 지하층 목욕탕으로 목욕하러 온다. 오후 반나절이지만 그들이 몸을 씻고 떠난 목욕탕은 묘한 느낌이 든다.

 각자 애달픈 사연과 서러움이 있을 텐데 먼저 노숙생활 내력에 대해 묻는 이는 없다. 연령대는 40~50대가 주류를 이루지만 간혹 30대 젊은이가 찾아오기도 한다.

 인간 생존에 꼭 필요한 게 의식주이다.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인간 품위를 나타내는 외모와 차림새가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우리 수도원 사도직 중 하나인 노숙인 목욕봉사는 이 시대에 정말 적합한 사도직이라 생각한다.

 솔직히 목욕탕 문을 열기 전에는 그들 특유의 고약한 냄새 때문에 고역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묵은 때를 벗고 빨래를 하고 나면 TV 앞 테이블 주변에 모여 빵과 커피 등 간식을 먹는다. 그때부터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는데 그들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노라면 상당한 인내가 필요하다. 몇 가지 흥미 있는 정보도 듣는다.

 예를 들면 무료급식소 정보인데 어느 집은 음식이 잘 나오더라, 어느 집은 정말 갈 곳 없고 돈이 떨어졌을 때 어쩔 수 없이 간다는 등의 얘기다. 어느 교회에서는 특정 요일에 500원을 주고, 어느 성당에서는 1000원을 주는데 그 교회를 지나 다음 코스로 성당을 가면 담뱃값이 해결되고 부지런히 다리품을 팔면 제시간에 우리 목욕탕에 정확히 도착한다는 `짜임새` 있는 정보도 나눈다.

 요일별로 정해진 코스를 따라 움직이고 행여 친한 사람이 일을 좀 해서 돈이라도 생기면 그날은 거나한 파티가 있다. 이제는 단골로 오는 노숙인들은 이름을 묻지 않아도 될 정도로 익숙해졌다. 우리 수사님과 이름이 같은 사람도 있고, 장애가 있는 경우엔 물품보관함 번호를 편리하게 배정해 주기도 한다.

 오늘은 ㄱ씨가 3개월 만에 목욕을 하러 왔다. 취업했다는 소문을 들어 알았는데, ㄱ씨가 오늘 또다시 노숙인 무리에 끼어 나타나니 반가운 마음에 앞서 덜컥 걱정이 들었다. 그러나 ㄱ씨는 잘 적응을 하고 있고, 오늘은 일이 없어 들렀다고 했다.

 하지만 신용불량자로 전전해온 ㄱ씨는 월급을 받아봤자 거의 압류당한다고 했다. 신용불량자가 된 것은 자신 탓이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많은지 계속 푸념을 늘어놓았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고 격려하며 작별인사를 나눴으나 내 맘도 편치는 않았다. 아~ 이렇듯 노숙생활을 끝내는 게 어렵구나! 그래도 옛 친구들이 그리워 짬을 내어 찾아온 그가 반갑고 고맙기 그지없었다.

 목욕이 끝나면 나름 말끔히 차려입고 저마다 가방을 메고 나가는 것을 뒤에서 보는 일은 나만이 얻을 수 있는 작은 행복이다. 마지막 손님이 건네는 너스레가 오늘도 나를 흐뭇하게 했다.
 "수사님, 나 요즘 술 안 마셔요!"

 ※그동안 집필해 주신 정민 수사님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필자는 안동교구 나섬학교 신효원(프란치스코) 교장입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2-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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