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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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

현정수 신부 (수원교구 비산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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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제품을 받은 해가 2000년이다. 사제라면 사제품을 받은 후 그 터질 듯한 가슴의 열정을 청소년들에게 쏟은 기억을 누구나 한 토막쯤은 갖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이는 마술로, 어떤 이는 연극으로, 또 어떤 이는 미술로…. 각자 방식으로 하느님 나라 기쁜 소식을 전하기 위해 몸부림치는 사제들 모습은 그 자체로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전례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되는 은총의 시간이다. 사제 초년생 시절, `어떻게 하면 청소년들이 전례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기쁨을 느낄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생각해 낸 것이 바로 랩 미사였다.

 성찬 전례 중 처음으로 시도를 했다. 내가 랩으로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봐~"라고 하면 "Yeah!!! Yeah~!!!" 부분은 복사들이 하도록 하는 센스도 잊지 않았다. 처음 시도했을 때는 어색함도 있었지만 그때 신자들 반응, 청소년들 반응은 잊을 수 없다. 요즘 말로 표현하자면`대박`이었다.

 환상이 깨지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 다음 주 미사 때 "너희는 모두 이것을 받아 먹어봐~ Yeah!!!"를 또 했다. 아이들의 얼굴에 미소가 퍼져야 하는데, `어? 저거 지난주에 한 거잖아!`하는 표정이었다. 그때 느꼈다. `아! 변해야 할 것이 있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구나!`

 사회환경 변화에 대한 고민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머리가 아플 정도다. 선구자 역할을 해야 한다는 압박도 있다. 청소년들에게 복음의 진수를 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변해야 할 것은 변해야 하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은 변하지 말아야 하는데, 변해야 할 것이 변하지 않고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변하고 있다면 어찌되는 것인가?

 청소년들이 하느님 자리에 나와 재잘재잘 거리는 것을 보면 참으로 예쁘다. 반대로 맥을 놓고 멍하니 앉아 있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안타깝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많이 자랐나 보다. 전에는 `이렇게 하면 아이들이 재미있어 할 거야`라고 생각했었지만 이제는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행복해 할까?` 나아가 `어떻게 하면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을까?`로 변하고 있다.

 지금 이 시간에도 밤을 지새우며 청소년들 가슴에 하느님 나라의 씨앗을 심어주기 위하여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고 있을 모든 이들(특히 동료 사제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요즘 신학생 때 읽었던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 해설서를 꺼내 다시 보고 있다.

 해설서에 "변해야 할 것과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의 기준은 다음과 같다. 성사에 가까운 것은 변할 수 없고, 변할 수 없는 것이 아니한 것은 변할 수 있다"는 내용이 있다.

 이게 무슨 소리일까 생각했었는데, 이제 그 짧은 대목의 의미가 가슴 속에서 울린다. 청소년들아! 이 소리를 너희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너희는 모두 이 소리 들어봐! Ye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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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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