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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그리움이 사무친 소녀들

한명자 수녀(클라우디아, 살레시오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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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한가위였다. 꿈사리(`꿈과 사랑의 나눔자리` 약칭) 가족 모두가 강화 제적봉 평화전망대를 찾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설렘과 기대를 안고 찾은 전망대 강 건너에 황해도 개풍군과 연백평야가 눈앞에 훤히 펼쳐져 있다. 황금벌판이 장관이다. 연백에서 생산되는 쌀이 북측 전체 쌀 생산량의 30나 된다고 한다. 아이들은 시종일관 "수녀님 보세요!" 한다. 전에 찾은 전망대와 달리 북측이 한눈에 내려다보이고, 마을과 북녘 형제들 모습이 망원경에 잘 보이니 흥분이 되는 듯하다.

 우리 공동체 아이들은 혼자 북녘땅을 탈출해 갖가지 사건과 아픔을 겪으며 한국에 온 만 17세에서 22세까지 무연고 탈북소녀들이다. 사연도 각양각색이다. 부모와 함께 탈북하다 부모만 공안에 잡혀 북송되고 홀로 된 아이, 중국으로 떠난 엄마를 찾아 나섰다가 한국에 온 아이, 좀 더 나은 세상에서 살고 싶어 부모에게 말도 못하고 집을 나선 아이 등….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고향과 가족들에 대한 뼛속 깊이 사무치는 그리움이다. 한국에 와 집도 생기고, 먹을 것도 풍요롭고, 못했던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 좋은 체험도 하지만 외로움에 휩싸인다. 일상에서도 문득문득 가족과 고향의 추억을 떠올린다. 배고프고 어려웠지만, 그때가 그립다며 아이들은 소리 없이 눈물을 흘린다. 가족 생일, 할머니 기일, 명절이면 어김없이 아이들은 무거운 표정을 한 채 이유 없이 짜증을 내고 싸울 듯 예민해지곤 한다. 우리는 그저 같이 있어 주고 묵묵히 받아줄 뿐이다. 그 이상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망원경에서 눈을 뗄 줄 모르는 아이들을 재촉해 전망대 전시실과 통일염원소를 둘러본 뒤 망배단으로 갔다. 가곡 `그리운 금강산`이 흘러나오고, 망배단에는 향이 피어오른다. 아이들은 모두 고향땅을 향해 절을 올렸다. 그런데 다들 약속이나 한 듯 일어서지 못하고 어깨만 들썩이며 오열한다. 한 아이가 큰소리로 외쳤다. "엄마, 미안해!" "엄마, 미안해!" 또 한 아이는 망배단 뒤쪽에서 쪼그린 채 하염없이 울며 "어차피 가지도 못할텐데 여기 왜 왔냐?"며 안아준 내 가슴을 쳐 댄다.

 함께해주고 돌봐주며 제아무리 속깊은 사랑을 줘도 아이들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채워줄 수는 없다는 걸 새삼 느낀다. 그렇지만 외로워 울 때, 편히 울 수 있는 품이 돼 주고, 그리워 너무도 그리워 분노가 차오를 때, 한두 대라도 칠 수 있는 가슴이 돼줄 수만 있다면 그것이 내 몫이리라! 그들에게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주고, 자신을 믿어주는 이들이 있다는 걸 느끼도록 이 자리에서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한다. "수녀님! 실컷 울고 나니, 속이 후련하네요!" "수녀님! 우리 다음에도 여기 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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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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