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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비인가 시설의 애환

백준식 수사 (베네딕토, 살레시오청소년센터장, 살레시오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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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시내 한 시장 근처에 가출한 남자 아이들 쉼터를 마련했다. 은인들 도움이 컸다. 때마침 아이들에 관심이 많은 봉사자 `베드로 삼촌`도 만나게 돼 쉽게 문을 열었다. 아이들을 거리에서 데려와 씻기고 입히고 먹이고 재웠다. 한번 쉼터를 이용한 아이들은 자유롭게 드나들며 필요한 의식주를 해결하며 지내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벽, 경찰이 쉼터에 들이닥쳤다. 그리고는 자고 있던 아이들과 삼촌을 데리고 인근 파출소로 갔다. 경찰은 영문을 모르고 파출소에 끌려간 아이들 가운데 손바닥과 발바닥에 먼지가 잔뜩 묻은 두 아이를 추궁, 시장 안에 있던 한 상가 금고를 턴 사실을 자백 받았다. 나는 서둘러 지도신부님과 함께 파출소를 찾아가 선처를 구했다. 그러던 중 파출소장이 들어와 신부님을 보더니 정중히 인사하며 자신의 아들도 신학생이라고 하는 게 아닌가? 사건 전말을 들은 소장님은 잘 중재해 줬다. 덕택에 아이들도 풀려났고, 금고를 털렸던 가게 주인도 후원자가 됐고, 인근 상인들도 필요한 옷가지며 먹거리를 나누곤 했다. 인근 뷔페에선 영업을 마친 뒤 먹을 만한 음식을 우리에게 가져다 줬다. 가끔 쉼터를 찾는 지역 불량배들로 인해 어려움을 겪던 우리는 순찰 경찰의 도움으로 좀 더 편안히 아이들을 돌보게 됐다.

 이후 쉼터는 아이들 사이에 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우리가 아이를 찾아 나서지 않아도 스스로 찾아왔다. 찾아온 아이들은 휴식을 취하고 옷을 얻어 입은 뒤 영양보충을 하고 또 다시 거리로 나가기를 반복했다.

 우리가 염려하던 재정적 어려움은 찾아오지 않았다. 아이들을 위한 재정은 도움이신 마리아께서 맡았다. 돈보스코 성인께서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우리 재정 담당은 도움이신 성모님입니다" 하고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시간이 지나자 하나 둘 아이들이 집안에 머물기 시작했다. 집에 머무는 아이들은 집안 청소며 설거지며 빨래 등을 돕고 자기 집처럼 여겼다.

 우리는 이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구상했다. 처음으로 미용학원과 연계해 한 아이를 막 보내기 시작할 무렵, 아무개역 우두머리를 자칭하며 `어깨` 4명이 찾아왔다. 이곳에 드나드는 아이들은 모두 자기 식솔이니 이 집을 계속 운영하고 싶으면 돈을 달라는 것이었다. 이미 몇 번이나 신변 위협을 받은 베드로 삼촌은 고개를 저었던 터였다. 비인가 쉼터로 운영했기에, 아이들을 법적으로 보호할 수 없었기에 우린 잠정적으로 쉼터 문을 닫았다. 하지만 지금도 거리를 배회하는 아이들을 보면 그때가 생각난다. 방황하던 아이들이 가족 품으로 돌아갔던 일, 영양실조와 질병 중에 있는 아이들을 병원과 시설에 연계해준 일, 축구ㆍ야구ㆍ농구장에 구경 갔던 일, 자유로를 타고 임진각에 소풍갔던 일 등 회상을 하려니 아련하다.

 우린 언제쯤이면 인가시설을 세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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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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