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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성지는 비수기(?)

권철호 신부(서울대교구 당고개순교성지준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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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4호선 당고개역인데 성지는 어디에 있어요?"
 
 당고개 순교성지가 조성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 곧잘 이런 전화를 받고는 했습니다. 요즘 아이들 말로 "헐, 대박!"이었습니다. 아마도 그분들은 당고개 순교성지라 했으니 성지가 지하철 4호선 당고개역 어디쯤에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헌데 의외로 이런 분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성지를 찾지 못해 헤매다 푸념하시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해서 순교성지가 조성된 이후 제일 먼저 낸 광고 내용이 이런 것이었습니다. "당고개 순교성지는 4호선 당고개역이 아닙니다. 용산 전자상가에 있습니다"라고 말입니다. 아마도 그동안 순교성인들에 무심했던 우리의 자화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무심함이 지속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합니다. 한동안 밀물처럼 찾아오던 순례자들이 지금은 썰물처럼 빠져나갔으니 말입니다. 무슨 한철 성지도 아닌데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이면 성지는 비수기(?)가 됩니다. 아마도 성지는 특별한 곳이어서 특별한 날에, 특별하게 돼서야 찾는 곳이라는 생각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분명 성지는 특별한 거룩함이 자리한 곳입니다. 하지만 그곳이 거룩한 것은 땅이 아니라 순교성인들이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순례자들은 성지 자체에 대해서는 알고 있어도 아직 그곳 성인들에 대한 생각은 짧습니다. 막연하게 그곳에 가서 기도하면 큰 은총을 받으리라는 생각만 할 뿐입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자칫 성인들을 공경은 해도 따를 수 없는, 따르고 싶지 않은 모범으로 변질시킬 위험이 있습니다.
 
 교회가 성지를 조성한 까닭은 성인들의 삶을 통해 그 모범을 따르고자 함이고, 나아가 천상 복락을 나누어 받기 위함입니다. 헌데 따르고 싶은 모범은 뒤로하고 천상 복락만을 탐한다면 그것은 자칫 성지를 기복신앙의 온상지로 만들 수 있습니다. 성지는 특별한 날에 찾을 수 있는 곳일지 모르지만, 성인들은 일상 밖이 아닌 일상 속에서 기억돼야 마땅한 분들입니다. 우리 신앙생활 속에 자리하지 못한 성지는 특별한 박물관이나 기념관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해서 성인은 언제고 기억돼야 하고, 성지는 언제든 찾아야 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하느님의 거룩함이 저 높은 하늘 위에만 자리한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대한 사랑으로 내려오셨듯이 성인들은 그렇게 우리 삶 한가운데에서 하늘의 은총을 나눠주시기 위해 오늘도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십니다. 시대는 변해도 세상을 산다는 것은 인간의 힘만으로는 사실 늘 역부족입니다. 그러니 새해에는 성인들의 전구에 힘입어 새롭게 시작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한철 성지가 아닌 늘 함께하는 성지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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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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