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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거룩함은 일상에서 발견되는 은총

권철호 신부 (서울대교구 당고개순교성지준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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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를 조성할 때 삼각지본당 사목과 성지 공사를 병행했습니다. 보기에 따라서는 두 가지 일을 하니 버겁지 않느냐고 우려하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나름 걱정하는 마음에서 하신 말들이지만 그럴 때마다 이렇게 답하곤 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쉴 줄 알고, 아무리 한가해도 일할 줄 알아야 사제"라고 말입니다. 실상 사제의 삶이라는 것이 그러하기도 합니다. 바쁘기로 따지면 끝도 없고, 한가하기로 따지면 이보다 더한 삶도 없습니다. 하지만 외적인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늘 마음의 문제이기에 주어지는 모든 일을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 하는 것이 항상 중요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때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책임감이라는 무게를 조금 내려놓을 수 있는 곳이 성지 사목이기도 합니다. 당고개순교성지는 교적이 없기 때문에 병자성사나 장례미사, 기타 정해진 공동체 모임들이 적습니다. 그런 점에서 조금 한가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성지는 또 다른 삶의 무게를 가지고 다가오는 분들로 인해 무게감과 긴장감은 본당에 비해 조금 더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본당 공동체에서 상처를 입거나 심각한 병에 걸린 분들, 나아가 저마다 가슴 아픈 사연들을 갖고 성지를 찾습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많아 상대적으로 더 깊은 애정과 진정성을 갖고 대해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성지에 부임한 이후 은총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있다면 고해성사와 미사에 대한 남다른 애착입니다. 생각해 보면 순교성인들은 오늘 우리가 일상적으로 드리는 미사에 참례하자고 수많은 고초를 마다하지 않았고, 고해성사를 받기 위해 먼 길을 다녔습니다. 그런 순교성인들을 생각하면 지극히 일상적인 오늘의 전례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일까, 성지를 찾는 분들의 고해성사는 본당에서와 달리 진정성과 무게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참여하는 성사는 그 자체로 이미 은총의 옷을 입고 있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성지는 이처럼 특별한 은총이 자리하는 곳처럼 느껴지지만, 실상은 지극히 일상적인 전례가 가져다주는 은총을 자각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성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삶을 성인들처럼 살아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처럼 일상적인 기도와 전례를 성지에서처럼 드릴 수 있다면 그 은총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누군가 그랬습니다. "삶이란 인연 따라 만들어 가는 창작품이고 그 인연의 끝자락에 하느님은 영원을 달아놓으셨다"고 말입니다. 성지는 순교성인들과 인연으로 영원을 만지작거릴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늘도 성지는 그렇게 특별하면서도 지극히 일상적인 모습으로 순례자들을 맞이합니다. 거룩한 곳에 자리한다고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삶이 그 모든 것을 지극히 거룩하게 만든다는 믿음으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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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4-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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