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사목일기] 굿바이 ''죤 가랑''

한만삼 신부(수원교구, 아프리카 수단 선교)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남수단 내전의 영웅 닥터 죤 가랑(1945~2005)이 헬기 추락사고로 세상을 떠났지만, 아직도 아랍권인 북수단으로부터 남수단을 해방시킨 혁명적 영웅으로 존경과 사랑을 받고 있다.
 지난해 어느 날, 아강그리알에 막 도착해 상황 파악에 정신이 없을 때 잘생긴 흑인 청년이 땀에 흠뻑 젖은 채 찾아왔다. 이름은 `죤 가랑`이고 `두오니`의 교리교사이며, 한동안 교리교사를 못했는데 이젠 새롭게 시작하고 싶어 찾아왔다고 했다.
 그의 말을 듣고 지도를 찾아보니, 우리가 있는 곳에서 대각선으로 반대편 끝에 조그맣게 표시된 마을이었다. 어떻게 왔느냐고 물으니 60㎞ 걸어왔다고, 길을 걷다가 이틀을 숲 속 나무 밑에서 잤다고 대답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는 빈손으로 찾아온 그의 열정에 감동을 받았다.
 기쁘기도 하고 기특해서 그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좀 주고는 "미안하지만 전임 신부님께서 주신 명단에 네 이름이 빠져 있기 때문에 마을을 방문한 다음 상황을 파악하고 교리교사로 임명하겠으니 실망하지 말고 계속 봉사해 달라"고 부탁하고 돌려보냈다.
 그리곤 우기가 시작됐다. 교리교사 지역모임 때 교사들은 길에 물이 가득 차 위험하니 오토바이로도 갈 수 없다며 찾아가겠다던 나를 극구 말렸다. 그 후 나는 딩카말을 배우기 위해 3개월 동안 교리교사 모임에 가지 못했고, 방문단 일과 사고처리, 성탄절과 여러 가지 분주한 일로 그를 깜빡 잊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건기가 돼 공소 방문계획을 세우면서, `두오니`도 방문할 건데 죤 가랑은 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분위기가 잠시 멈칫하더니, 한 교리교사가 "신부님 죤 가랑은 죽었습니다"라는 것이었다. 난 웃으면서 "아, 닥터 죤 가랑이 돌아가신 것은 알고 있고, 교리교사 죤 가랑 말이야"하고 말했다.
 "네 그 교리교사 죤 가랑이 죽었습니다." 순간 머리를 망치로 맞은 듯 멍해졌다. "아니 죽었다니! 그게 무슨 말이야, 언제 무슨 일이 있었는데?" "지난해 10월에 죽었습니다. 신부님 있잖아요, 수단에는 많은 질병이 있습니다…."
 그리곤 한동안 그들도, 나도 말을 더 잇지 못했다.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가슴 한구석이 미여 왔다.
 이틀 밤을 지새우며 신부님을 만나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걸어왔던 잘생긴 청년 죤 가랑의 환한 미소가 떠올랐다. 좀 더 일찍 서둘렀어야 했다. 그의 마을을 찾아가는 일을….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9-03-22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21

잠언 21장 2절
사람의 길이 제 눈에는 모두 바르게 보여도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