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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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독침과 승리

한만삼 신부(수원교구,아프리카 수단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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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부들이 딩카어 수업을 받는 동안 새로 지은 성당 뒤에 있던 초가지붕 옛 성당 짚이나 지붕받침목, 문 등을 가난한 사람들이 떼어 가는 바람에 흉물스럽게 변해버렸다. 고민 끝에 쓸만한 나무라도 건져볼 생각으로 소신학생들과 지붕 해체작업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짚단을 대나무로 훑어 내리는데 갑자기 새카만 벌 몇 마리가 보이더니 손목과 팔뚝 등 언저리가 따끔따끔했다. 얼른 자리를 피했다. 뜻밖의 벌 공격에 당황했지만, 조금 붓고 마려니 하고 나무그늘에서 잠깐 쉬고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이상한 징후가 느껴졌다. 몸에서 열이 나고 현기증이 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느낌에 약을 먹으러 숙소로 되돌아오는데 근육 마비 증상이 나타났다.
 약을 찾고 있는 동안, 온몸이 미치도록 간지럽더니 얼굴에 경련이 일고 입술이 마비됐다. 잠시 후 온몸에 커다란 붉은 반점이 돋아나고 어지러움이 더 심해져 케냐 간호사를 만나러 결핵환자를 위한 요양원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간호사를 만나서 상황을 이야기하는데 갑자기 가슴이 뻐근해지면서 호흡이 곤란해졌다.
 그가 떨리는 목소리로 응급상황인데 걱정하지 말라며 자리에 앉히고 얼른 주사를 챙겨 와 손등에 정맥주사를 놓았다. 주사를 놓는 동안에 숨이 가쁘고 혼미해지더니 주사를 맞고 나서 바로 토했다. 그리곤 준비해준 침대에 누워서 한동안 경련과 복통에 시달렸다. 정말 순식간이었다.
 `이게 독침이라는 거구나…. 생각지도 못한 시간에 이렇게 당할 수도 있구나….` 수단 파견 미사 때 주교님께서 `아프리카에 뼈를 묻을 각오로 가라`는 말씀이 귓가에 웅웅 울렸다.
 "이렇게 쓰러질 수는 없습니다, 주님…." 침대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며 그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조선을 찾아온 벽안의 새 신부들이 형장의 모래밭에 앉아 한없이 눈물을 흘렸던 그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무도 슬퍼하지 않을 무의미한 죽음이고 억울한 죽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올리브 동산에서 마음이 찢어지도록 시달리신 무의미성의 유혹이 무엇인지….`
 하지만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어야 열매를 맺는 것이고, 그것이 당신 영광의 전부임을 믿는 믿음이 죽음의 독침을 부서트린 부활의 승리임을 헤아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구경 온 사람들도 떠나고 주위가 조용해지자 침대에서 일어났다.
 네, 주님! 저에게 남은 건 당신의 승리가 저의 승리가 되는 그 만남을 향한 전진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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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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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38장 16절
주님, 사람들은 주님 안에서 살아가고, 제 목숨은 주님께 달려 있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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