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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벼룩간의 간

한만삼 신부(수원교구, 아프리카 수단 선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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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남수단으로 들어오는 비행기를 `타임머신`이라고 부른다. 나이로비에서 들어오는 네 시간 비행은 공간이 아니라 시간을 가로질러 오기 때문이다.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면서 천지창조 이후로 문명의 이기를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채 살아가는 오지 원주민이 나의 `이웃`이다. 그들 안에서 태양광으로 전기를 쓰고, 위성 인터넷을 사용하는 나는, 부끄럽지만 이들이 보기에 상상할 수 없는 사치를 누리고 있다.
 공소 방문을 나가면 거의 모든 어린이는 옷을 벗고 있다. 한 벌뿐인 옷을 아끼기 위해 평상시에는 옷을 입지 않는다. 식민시대를 거쳐 아랍권 북수단으로부터 철저히 소외된 개발과 수십 년에 걸친 내전으로 생존의 밑바닥에서 허덕이고 있는 나의 `이웃` 때문에 마음은 늘 괴롭다. 내전기간 쏟아부은 구호물품 단맛에 젖은 이들의 `의존 증후군`은 뿌리 뽑기 힘든 걸림돌이 되고 있다. 자신들이 무엇을 스스로 하기보다는 남들이 나를 위해 무엇을 줄 것인지에 더 관심을 갖고 있으며, 아직도 하늘을 바라보며 왜 비행기가 와서 먹을 것을 떨어뜨리지 않는지 원망하고 있다.
 짧았던 1년간 발전상을 보면 도시를 오가는 미니버스가 생기고 마을마다 구멍가게와 식당들이 우후죽순으로 들어섰다. 그리고 에펠탑처럼 솟은 이동통신 철탑이 전부다. 아니 이동통신이라니? 길을 따라 솟아오른 철탑을 바라볼 때마다 발전소도 전봇대도 없는 나라, 유선전화라고는 구경도 못해본 이들에게 휴대전화를 팔아 이용요금을 긁어모으려는 자본의 갈고리가 내 옆구리를 긁어내는 것 같다.
 싸구려 휴대전화에 현혹된 이들은 엄청난 돈을 휴대전화에 쏟아붓는다. "너희 소 잘 있니?"라는 안부밖에 물을 것이 없는 이들이 공중에 뿌릴 통화요금은 누구의 손으로 들어가는 것일까….
 자신들이 생산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이 그나마 쥐뿔만큼 가진 돈이 이미 생산된 잉여로 어찌할 바를 모르는 선진국의 이윤추구에 휩쓸려 들어가고 있다.
 먹을 것만을 뿌리는 해외원조는 이들에겐 `독`이다. 종속적 부조리의 악순환으로 결국 거대자본의 촉수에 휘말리는 현실을 바라보는 것조차 너무 고통스럽다. 배고픈 자녀들에게 자신들이 대량으로 잡은 물고기 일부를 건네주는 `원조`의 손길은 이들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는 시지프스의 구덩이가 되고 만다.
 부자의 식탁에서 빵 부스러기를 주워 먹으며 삶을 이어가고, 동네 개들이 종기를 핥았던 라자로의 죽음은 결국 자신의 `이윤`밖에 보지 못한 부자의 눈멂에 있었음을 명심해야 한다. 그래서 부자는 무엇을 얻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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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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