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1일
사목/복음/말씀
전체기사 지난 연재 기사
[사목일기] 천국의 열쇠

폰트 작게 폰트 크게 인쇄 공유

    아강그리알 미션 사제관 숙소에는 여러 종류 조그만 헛간들이 많아 식당에는 열쇠꾸러미들이 주렁주렁 포도송이처럼 걸려 있다.
 처음 수십 개 열쇠 중에 필요한 열쇠를 찾아내는 것은 여간 귀찮고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때론 급하게 열쇠를 찾기 위해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나서는 결국 갈아입었던 바지 주머니에서 찾았던 황당함도, 깜빡 열쇠를 안에 두고 자물쇠를 잠그거나 잃어버려서 자물쇠를 자르거나 부숴버리기도 몇 차례였다. 심지어 "어디 열쇠 보았니?"라는 질문을 받게 되면 나도 모르게 등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노이로제 반응이 나타나기도 했다.
 그렇게 열쇠의 존재는 귀찮기도 하고 소중하기도 한 존재였다. 하지만 정말 내가 찾아야 할 열쇠는 무엇일까? 고등학생 성소자 시절 「천국의 열쇠」를 읽고 `좁은 문`을 선택했던 치셤 신부의 삶에 감동을 받아 사제직에 대한, 해외선교에 대한 열망이 용솟음쳤던 열쇠, 안락하게 `잘 사는 삶`이 아니라 진리를 따르는 `참된 삶`에 대한 열정과 헌신으로의 응답이 나의 열쇠였음을 헤아렸다.
 결국 그 열쇠를 찾아 가난의 목마름으로 불타오르는 수단까지 왔지만, 수단에서 느껴지는 현실은 자물쇠로 구석구석 잠그다 못해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모를 정도로 쇠사슬로 꽁꽁 얽혀 있는 녹슨 `금고` 같았다.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지 암담해지는 기분이었지만,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해 보여도 하느님께는 안 되는 일이 없음을 믿었던 성모님의 믿음이 열쇠의 초석임을 고백하게 된다.
 베드로 성인에게 맡겨진 열쇠가 단지 `다스림`과 `권위` 열쇠가 아니라 주님께서 보여주셨던 본보기대로 "내 양들을 돌보아라"하셨던 사랑 열쇠였기에…. 이들의 황당한 반응에 수십 번 아니, 수백 번 실망하고 절망하며 상처받는다 한들, 하느님께서 절대로 포기하지 않으실 이들에 대한 기다림과 사랑은 수단 밤하늘을 수놓는 `별들의 숲`처럼 헤아릴 길이 없기 때문이었다.
 200여 년 전 불가능해보였던 한국 교회 성장 또한 순교 선열들과 선교사들 눈물과 땀방울, 목숨과 바꾼 신앙의 증거가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한국교회가 있을 수 있었음을 생각해 본다면, 난 단지 시간을 거슬러 왔을 뿐, 본질적인 것은 다를 것이 없었다.
 나의 열쇠는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해 가르치고 보여주시는 사랑이고, 또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당신 평화와 함께 `우리`와 `나`에게 맡기신 것이다. 네! 주님, 당신께서 구원의 문이 되셨으니 당신의 열쇠는 저의 열쇠이기도 합니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09-04-26

관련뉴스

말씀사탕2024. 5. 21

히브 4장 16절
확신을 가지고 은총의 어좌로 나아갑시다. 그리하여 자비를 얻고 은총을 받아 필요할 때에 도움이 되게 합시다.
  • QUICK MENU

  • 성경
  • 기도문
  • 소리주보

  • 카톨릭성가
  • 카톨릭대사전
  • 성무일도

  • 성경쓰기
  • 7성사
  • 가톨릭성인


GoodNews Copyright ⓒ 1998
천주교 서울대교구 · 가톨릭굿뉴스.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