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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단을 입으며] 허정현 신부

물과 성령으로 새로나지 않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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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정현 신부
 
부활 8부 축일이 지난 다음 월요일 복음은 요한 3,1-8이 나오는데 참으로 의미심장하다. 결국 예수님의 부활 이후에는 새로 나야 하는데 곧 성령으로 새로 나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예수님이 모범적인 삶을 살고 있는 니고데모에게 거듭남을 얘기한 것은 거듭남이 모든 이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닐까. 사회적 도덕적으로 지탄을 받든, 존경을 받든, 인생의 최고 수준에 있든, 혹은 밑바닥에 있든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성령으로 태어나야 비로소 구원받을 수 있음을 선언하신다. “누구든지 물과 영으로부터 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3,5)고.

역사적 사건으로, 그리스도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한 것이다. 바로 여기서 새롭게 하고 새로운 생명을 낳는 영이 나온다. 이 영은 우리를 신앙으로 붙들어 맨다. 그야말로 성령체험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현재화하며, 영원한 생명의 부활세계 안으로 인도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부활신앙은 성령과 함께 할 때 가능한 것이다.

우리는 많은 경우 성령을 받았다는 것의 증거로 방언의 은사나 치유의 은사를 이야기 한다. 그러나 진정 성령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닮을 수 있는 힘이 생기기 시작하는 것이다. 나의 삶, 나의 생각과 말의 결과가 예수님이 원하는 것인가 아닌가를 보면 내가 성령을 받은 사람인가 아닌가를 알 수 있다. 곧 비움과 나눔과 섬김의 방식으로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가 오게 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인가를 살피고 거기에 맞게 선택하는 사람이 성령을 따르는 사람이다. 나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사랑하시고 그러기에 아파하시는,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가 오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더라도, 내 생활의 어려움을 가져온다 하더라도 말이다. 예수님과 함께 죽은 자만이 새로 태어날 수 있다. 그런 사람만이 부활을 체험한다. 예수님과 함께 죽는다는 것과 성령을 따른다는 것은 같은 것이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에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성령을 보내주신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주면 그가 용서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20,22-23). 요한의 이 복음은 분명 성령강림이다. 따라서 요한복음에 따르면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바로 그날 저녁에 성령강림을 체험한다.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 위에 숨을 내쉬신다. 이 성령은 구원의 능력이 될 것이며, 제자들은 부활하신 주님과의 일치 안에서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요한복음 20장에서는 성령의 은사가 사도들이 죄를 용서하는 권한으로 나타난다. 사도들은 주님께서 주시는 성령의 힘으로 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받았는데, 코린토 전서 12장에 따르면 그런 죄 용서의 권한은 결국 공동체의 선익을 위한 것이다.

특별히 죄의 용서를 통하여 성령께서는 교회 안에서 활동하며 믿는 이들과 함께 계신다. 믿는 이들은 죄의 용서를 통하여 성령의 활동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현존을 느끼며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을 체험한다. 사실 죄의 용서는 주님의 부활과 성령의 파견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즉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성령에 참여시켜 주신 것이다.

루카가 50일 동안 교회가 탄생할 준비를 갖추고 성령강림부터 비로소 교회가 본격적으로 활동을 개시하게 되었다는 역사관을 가지고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기록한 반면, 요한은 그런 시간적인 개념보다는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성령을 받았다는 사실에만 초점을 두고 있다.

루카는 사도행전 2장에서 탈출기 20장의 문학적 표현을 빌려, 성령강림 때에 세찬 바람과 불길 같은 것이 나타나며 성령께서 사도들 위에 내려오셨다고 장엄하게 묘사한다. 그런가 하면 요한은 20장에서 아주 조용한 가운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신다.

그러나 오순절 날 정말로 거창하게 성령강림이 이루어졌는가? 아니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그날 저녁에 제자들이 조용하게 성령을 받았는가? 이것은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의 성령을 받고 변화된 삶을 살았다는 것이다. 문을 꽁꽁 걸어 잠그고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 용감히 나아가 복음을 선포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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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09-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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