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품 때에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성구를 선택하는데 이 구절이 바로 하느님께서 제게 해주시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자신이 없습니다. 그저 주님께서 쓰시고자 하시는 대로 쓰이기를 바랄 뿐입니다. 그래도 아직도 완전하지 않습니다.
스물여덟 젊음에 끓는 피를 감당하지 못한 시절 내 힘을 뺄 수 없었고, 사십이 되면 힘이 빠질 줄 알았는데, 아직도 덜 빠진 모습입니다. 세워주신 주님께서 ‘알아서 하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우두커니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시골의 본당신부로서 교우들과 함께 했던 날들 속에서 그들과 함께 서 있어 주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모두가 신부님이라고 사랑하고 아껴주셨습니다. 모두 모두 이제는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감사드립니다. 하느님께서 뽑아 세워주셔서 사랑 속에 지낼 수 있었습니다. 제가 잘 생기지도 특별히 잘 하는 것이 없어도 사제라는 이유로 사랑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새로운 분야에서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아파하는 이들과 함께 하려고 합니다. 또 다시 그냥 함께 하고 있을 것입니다.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뽑아 세우셨으니 그분께서 해 주시겠지요. 저는 더 힘을 빼려는 노력을 할 뿐입니다. 시간이 더 흐른 뒤에 서서히 힘이 빠지면, 더 아름다운 모습으로 서 있을 때를 기다려 봅니다.
항상 그 자리에 서 있는 낙락장송(落落長松)이기를 희망하며 오늘도 그 자리에 서 있겠습니다.
누구나 찾아와서 앉아서 쉬어가는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쉼이 필요한 이들에게 안식처가 되어주는 빈 의자처럼, 항상 그 자리에 서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