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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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임용환 신부(서울대교구 삼양동선교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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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 24). 사제 수품 때 정한 성경구절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겁도 없이 이 구절을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살아가면서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서품을 앞두고 돌아가신 김수환 추기경께서 왜 이 구절을 택했냐고 물으셨다. "어떤 일을 할 때 처음에는 좋게 나가다가 갈수록 처음과는 다르게 변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그 이유가 자신의 뜻이나 욕망을 죽이지 못해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이 구절을 택했다"고 말씀드렸다. "난 그렇게 살지 못했네"하고 추기경님이 말씀하셨다. 몰랐다. 그 때는 몰랐다. 추기경님의 그 말씀이 얼마나 깊은 뜻을 품고 있다는 것을.
 살아오면서 내 뜻과 욕망을 죽이지 못해 저질렀던 수많은 잘못들, 그런 나로 인해 상처받은 많은 사람들, 이제 어떻게 용서를 청해야 하는가? 어떻게 용서받을 수 있을까? 이제부터라도 이 성경구절대로 살아가야겠지, 내가 먼저 용서의 삶을 살아가야겠지.
 "용서는 단지 우리에게 상처를 준 사람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들을 향한 미움과 원망의 마음에서 스스로를 놓아주는 일이다. 그러므로 용서는 자기 자신에게 베푸는 가장 큰 자비이자 사랑이다."
 달라이 라마의 말처럼 이렇게 부족하고 나약한 결점투성이의 나 자신을 먼저 용서하고 받아들여야겠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노래했던 어느 시인처럼 그렇게 살지는 못하더라도 부끄러움을 감추려 하기보다는 용서를 청하는 삶을 살아야겠지.
 자신이 사라지고 난 자리에 노란 민들레꽃을 키웠던 `강아지 똥`이란 동화가 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 준 `아낌없이 주는 나무`란 이야기도 있다.
 자신만을 위해 살아가는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보이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며 세상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사막이 아름다운 이유는 어딘가에 있을 오아시스 때문이라는 말처럼 그래도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보이지 않은 곳에서 자신을 내어 주는 그런 사람들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삶은 부활의 기쁨과 영광으로 사랑의 열매를 맺을 것이다.
 울창한 숲을 이루는 것은 그 숲속에서 말없이 죽어가는 많은 생명체들이다.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오늘 하루 나의 삶이 나를 내어 줄 수 있는, 기꺼이 죽을 수 있는 삶이 되길 주님께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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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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