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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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지혜와 규진이

황재모 신부(안동교구 신기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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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목하고 있는 이곳은 시골이라 아이들이 이 동네 저 동네 흩어져 살기에 성당을 오가는 교통편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래서 본당 승합차를 운행하는데, 아이들이 귀가할 때는 보통 본당신부가 직접 운전을 한다.
 집으로 돌아가는 승합차 안에서 무료함을 달래려 가끔 아이들에게 노래를 시키는데, 초등학교 2학년 지혜라는 아이는 이상한 노래를 곧잘 부른다. 가만히 들어보니 개신교 주일학교 노래다. 그래서 "어떻게 그런 노래를 다 아는거야?" 하고 물어보니, 일요일에는 개신교 주일학교를 나간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토요일에는 성당에 나오고 주일에는 예배당을 나가는 아이인 것이다.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아니, 이런 시골에서 진정한 `교회일치주의자`를 만나게 되다니! 지혜 할머니에게 물어보니 크게 개의치 않는다는 듯 그냥 웃으면서 지혜 오빠 규진이보다는 낫다는 것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규진이는 아예 성당에는 발을 끊고 주일날 예배당에만 나가니 그게 더 문제라는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규진이도 지혜와 함께 어린이 미사에 참석시키라고 계속 종용했다. 얼마나 귀찮았는지 드디어 규진이가 토요일 어린이 미사에 나타났다.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성당으로 오는 승합차 안에서 운전봉사하는 형제님에게 "아저씨, 사실 저는 수녀님이 자꾸 나오라고 해서 나가지만, 오늘만 성당에 나가고 다음 주부터는 나가지 않을 겁니다"라고 엄포도 놓았다고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다음 주에도, 또 그 다음 주에도 규진이가 성당에 계속 나오는 것이었다. 그렇게 단호하게 다음 주부터 성당을 나오지 않겠다던 규진이가 왜 계속 나오게 되었는지 아직까지 물어보지는 않았다. 어쨌든 규진이는 그 후로 꾸준히 성당을 나오게 됐고 마침내 첫 영성체까지 하게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규진이가 원래 다니던 예배당에서 규진이에게 집요하게 러브콜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 예배당 목사님이 줄기차게 전화를 걸어 "너 왜 요즘 교회 안 나오니? 어디 아프니? 집안에 무슨 문제가 있니?"라고 닦달을 한다는 것이었다. 목사님은 급기야 집에까지 찾아와 규진이와 담판을 벌였다. 할머니 얘기를 들어보니 우리 규진이는 그 목사님 앞에서 당당하게 이렇게 얘기를 했다는 것이다. "저는 이제 성당에서 첫 영성체까지 했기에 더 이상 교회에는 나가지 않겠습니다." 젊고 순진한 목사님은 그 얘기를 듣고는 울상을 지으면서 돌아가더라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배꼽을 잡고 웃었지만 마음 한켠에 그 목사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예배당에도 아이들이 몇 명 되지 않을텐데 곶감 빼 먹듯이 하나 둘 빼내오는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도 우리 규진이는 정말로 의젓하고 장하다. 당당하게 자기 신앙을 결정했으니 말이다. 어쨌든 지혜는 지금도 열심히 개신교 노래 부르면서 성당에 잘 나오고, 규진이는 이제 복사단에도 가입해 더욱 의젓하게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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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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