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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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푸엉의 부탁

박문자 수녀(진안인보다문화가족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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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국을 떠나 낯선 땅에서 새 삶을 시작한 푸엉이 다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단다.
 푸엉은 모든 사람과 유난히 잘 어울려 지내고 열심히 사는, 또 그야말로 사람을 끌어당기는 재주가 있는 우리 센터의 인재(?)였다.
 남아 있는 사람이 떠나는 사람에게 송별식을 해주는 것이 우리 관습인데, 마음까지 예쁜 푸엉은 오히려 그동안 함께 공부한 동료들에게 한턱 내겠다며 센터에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한다. 닭요리를 푸짐하게 해서 실컷 먹이고 싶단다. 흔쾌히 허락했다.
 마침내 잔칫날. 수요일마다 여는 요리교실에서 일년이나 배운 덕분인지 송별 잔치를 위해 잡아온 토종닭을 칼로 툭툭 쳐서 먹기 좋게 토막을 내는 일도 시원스레 잘한다. 음식 준비가 거의 끝날 때쯤 멀리 충청도 증평에 사는 엔 내외가 또 한 명의 친구와 함께 마지막으로 도착했다. 증평에서 여기가 어디라고…. 남편이 참 고마웠다.
 근사한 송별 파티가 시작됐다. 이별의 섭섭함이 가득한 그들은 어느새 반지를 준비해 푸엉의 손에 끼워주었다. 감동한 푸엉의 눈에서 촉촉한 눈물이 흘러내린다. 아름다운 모습들이다. 마치 친가족과 헤어지는 언니, 동생들처럼 애잔한 아쉬움이 흐르는 분위기에 코끝이 찡해 온다.
 그런데 푸엉이 갑자기 "수녀님! 이걸로 우리 외국사람 맛있는 거 많이 사 주세요" 하며 봉투를 내미는 게 아닌가. 삼만원, 푸엉에게는 큰 돈이었다. 가난한 과부가 헌금한 렙톤 두 닢과 같은, 영원히 간직하고픈 `사랑`이었다. 아~ 누가 감히 이들의 사랑을 떼어놓을 수 있을까?
 푸엉은 베트남에서 세례를 받은 유일한 신자로서 이제 갓 세례를 받은 타오와 짱에게 신앙의 모범 선배이기도 하다. 타오는 곧잘 주일미사를 빠지는데 그 다음 주에는 영락없이 푸엉에게서 고해성사 지도를 받는다. `미사에 빠지면 안 되지!`푸엉의 꾸짖음에 타오는 열심히 이유를 설명하지만 소용이 없다. `오늘 고해성사 해!`라는 푸엉의 야무진 명령에 타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푸엉과 헤어짐에 누구보다도 타오가 더욱 아쉬워하는 건 바로 영적 지도자를 잃은 듯한 허전함 때문인 것 같다.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당신 아들까지 아낌없이 내어주신 하느님께서 이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주시리라 믿으며, 외국 사람들 맛있는 거 많이 사주라는 푸엉의 부탁이 늘 이루어지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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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0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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