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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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전 아무것도 몰러유, 신부님(상)

최상순 신부(대전교구 순교성지 공주 황새바위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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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할머니! 예수님 모시고 왔는데, 기도하셔야지?" "네, 근디유 전 아무것도 물러유.~"
 "알았어요…. 그럼 제가 다 알아서 기도할 테니 그냥 따라만 하세요…. 자~~ 손 모으시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3초간 침묵) 아멘이라고 안 해! 할머니? 아멘은 할머니가 하시는 거여!" "전 아무것도 물러유…. 신부님!"
 매번 병자영성체를 해드릴 때마다 성호경을 제대로 못 하시는 할머니와 겪는 말씨름이다. 최소한 `주님의 기도` 만큼은 함께하자고 하면, 역시나 그저 `아무것도 물러유!`로 일관성(?)있게 밀어 붙인다. 그래, 연세도 있고 몸도 편하지 않으시니까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이 경우는 너무하지 않은가? "할머니! 이젠 예수님 모실 거예요. 그리스도의 몸!" 당연히 "아멘"이라고 응답하리라 생각하겠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예상을 완전히 뒤엎는다. "감~~사합니다!" 그것도 내내 몸을 굽히시면서….
 로마에서 돌아와 황새바위 성지에 오기 전, 잠시 6개월 동안 어느 시골본당에 있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교우 분들과 함께하는 본당생활이라서 그런지, 그 기쁨과 설렘은 마치 새 신부가 첫 본당에 나가 느끼는 그것과 별 차이가 없는 듯했다. 한 달에 한번 있는 병자영성체 역시 그 기쁨 중에 하나였다. 하지만 유독 마리아 할머니 집에만 가면 힘이 빠졌다. 한편으로는 전혀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호경 하나도, 성체를 모실 때조차 아무것도 모르겠다고 하시며, "아멘"이라는 응답 대신 그저 "감사합니다!"라고만 하니, 나더러 어떡하란 말인가? 애꿎은 반장님만 붙잡고 다시 잘 가르쳐 드리라고 말씀을 드리고 돌아가지만, 상황은 늘 무한 반복(?)이었다.
 어느 늦가을 무렵 주일 오전! 그 아무것도 모른다는 할머니 옆집에 사시는 분에게 전화가 왔다. 마리아 할머니가 좀 아픈 것 같은데, 와 줄 수 없냐는 것이다.
 주일이라서 매우 조심스럽게 운을 떼 길래 언뜻, 못 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와 주시면 참 고맙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늘 아프신 분이 왜 자꾸 불러 대시는지…. 그것도 바쁜 주일에…. 며칠 후면 병자영성체라 그때 볼 수 있을텐데….` 그래도 할머니에 대한 넓은 아량(?)으로 오후 늦게 수녀님과 함께 출발하면서, 그래도 혹시나 싶어 성체를 모시고 갔다. 이 얼마나 친절한 목자의 아름다운(?) 모습이던가? 피곤하지만, 그래도 양이 부르니 그 부름에 응답하며 가는 저 모습!
 그런데 한껏 우쭐거리고 어기적거리며 가는 사제의 뒷모습에 예수님은 뭐라 말하실까? 그래도 이 미련한, 참으로 한심한 나를 통해서 예수님은 늘 놀라운 일을 준비하며 구원이란 무엇인지를 똑똑히 보여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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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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