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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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전 아무것도 몰러유, 신부님!(하)

최상순 신부(대전교구 순교성지 공주 황새바위 전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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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같으면 대문 앞까지 마중 나오시던 분이신데, 그날은 아무리 불러도 할머니의 인기척이 없었다.
 방문을 열고 들어간 순간! 이게 왠 날벼락인가? 며칠 전만 해도 생생하셨던 분이 정신을 놓으시며 임종하고 계시지 않는가?
 전화한 자매는 여전히 어려운지 조심스럽게 말한다. 며칠 전부터 보이지 않기에 와 봤더니 어젯밤부터 혼수상태에 빠졌고, 잠깐 정신이 들 때마다 신부를 그토록 찾으며 부르기에 전화를 했단다.
 내 그 좁쌀처럼 좁은 아량(?)은 한순간에 무너져 내렸다. 15시간이 넘도록 끝까지 죽음과 싸우며 사제를 찾으신 할머니는 이제야 거드름 피우며 나타난 내게 오히려 거꾸로 큰 아량을 베풀고 계셨다.
 "마리아 할머니! 정신 좀 차려보세요! 저 최 신부예요…. 제 말이 들리시면, 손이라도 한 번 움직여 보실래요?"
 다행히도 할머니가 내 손을 꽉 잡는다. 아직 숨은 끊어지지 않으신 것이다.
 이를 일컬어 불행 중 다행이라던가? 죄스런 마음은 잠시 접고, 할머니에게 병자성사를 드리기 시작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역시 아무런 대답이 없으셨다. 하지만 예전 묵묵부답과는 다르다. "아멘!"
 "그리스도의 몸!" 아무것도 모른다는 할머니는 수저에 얹은 성체를 어떻게 해서든지 삼키려고 부단히 애를 쓰며 삼키셨다. 마지막 전대사까지 드리면서 드디어 힘겨운 병자성사가 끝이 났다.
 "할머니! 이제 아무 걱정 마시고, 예수님과 성모님 잘 맞이하세요."
 잠시 후, 자리를 잠깐 비운 사이, 정말이지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다. 바로 그 할머니 아들이 달려왔다. 어머니가 돌아가셨다고….
 할머니를 보면서 내 눈이 의심스러웠다. 고통을 그대로 드러내던 검버섯이 피고 주름진 얼굴은 어느새 편안하고 환한 얼굴로 바뀌어 마치 어린 아이가 어머니 품에 안겨있는 듯한 표정이었다.
 손과 발을 가지런히 모아드리고 위령기도를 바친 후, 돌아오는 차 안에서 문득 사랑이신 하느님이 두렵게 느껴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할머니 영혼을 맞아들이시고 돌보시는데, 한심하기 짝이 없는 내가 그분 도구로 쓰였다는 생각에….
 그래! 아무것도 모르는 이는 그 할머니가 아니라 나다. 아무리 많은 책을 보았다 한들, 그 할머니보다 지혜롭고 똑똑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가장 고통스럽고 두려운 순간에, 예수님만 바라보며 끝까지 사제를 찾으신 그 할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지혜로운 이요, 가장 부유한 이였음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리라.
 이젠 내가 마리아 할머니에게 떼를 쓰며 귀찮게 한다. `마리아 할머니! 아무것도 모르는 저를 위해서 기도 좀 해 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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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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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112장 3절
부와 재물이 그의 집에 있고 그의 의로움은 길이 존속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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