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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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거룩한 만두

최정묵 신부(청주교구 지현카리타스노인복지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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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일하는 곳은 장기 요양 대상 어르신들이 함께 사는 작은 요양원이다. 지현카리타스노인복지센터 내에 있는 요양원으로, 요양 중인 할머니들과 오순도순 어울려 산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할머니 한 분이 점심을 드시지 않고 울기만 한다는 것이었다. 조리사 선생님은 그 할머니가 걱정도 안 되는지 재미있게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뭐가 그리 재미있느냐고?"고 물었다.
 이 말에 조리사 선생님은 어르신들에게 점심을 차려드리며 "오늘 만두는 신부님이 직접 빚은 것이니 맛있게 드세요"하고 했단다. 그런데 그 소리를 듣고나서 한 할머니가 갑자기 만두 위로 눈물을 뚝뚝 흘리더란다. "이 늙은이가 신부님이 만드신 거룩한 만두를 먹을 수 있다니…"하면서 "신부님이 빚은 만두를 먹을 수 있는 것이 너무 행복해서 울었다"는 사연이었다.
 바쁜 조리사 선생님 일손을 도와주느라 직접 빚은 만두 때문에 벌어진 에피소드다.
 오랜 시간을 혼자 살아왔기에 난 몇 가지 음식을 만들 수 있는데 그중 만두는 특히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어서 가끔 만들어 먹기도 하고 그날도 좋아하는 만두를 먹기 위해 한가한 참에 만두 빚는 것을 도운 게 사단(?)이 된 셈이다.
 그 할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난 마음속으로 행복한 눈물을 흘렸다. 아주 작은 일이라고 치부할 수도 있지만, 그 할머니를 행복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나를 더 행복하게 했다.
 학창시절, 학교 잔디밭에 앉아 친구와 나눴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때 그 친구는 내게 이렇게 물은 적이 있다. "넌 꿈이 뭐니?"
 그 질문에 난 이렇게 대답한 적이 있다. "나로 인해 다른 사람이 행복해 하는 것이야."
 난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사제의 길을 생각했고, 사제로서 삶은 이런 나의 꿈을 가능하게 해줬다. 사람들은 꿈을 이루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난 하루에도 몇 번씩 꿈을 이루기에 참 행복한 사람이다.
 이 일을 시작한 지 10여 년이 흘렀다. 그동안 어려움도 많았지만, 웃었던 시간들이 더 많았다. 이 일은 시간이 지날수록 남는 장사였다. 남은 것은 바로 웃음이다. 얼굴 찡그리는 일이 더 많은 세상에서 웃을 수 있다는 것은 분명 남는 장사였다.
 웃으면서 사는 삶, 그게 행복 아닐까 싶다. 난 오늘도 남는 장사를 위해 어르신들 손을 잡아드린다. 그리고 앞뒤 맞지 않는 말로 농담을 주고받는다. 마주 잡는 손과 주고받는 농담 한 마디는 어르신들을 웃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나를 더 행복한 사람으로 만든다.
 조만간 점심 식단으로 할머니들에게 `거룩한 만두`를 한 번 더 상에 올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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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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