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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내가 누구여?

최정묵 신부(청주교구 지현카리타스노인복지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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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요양원 거실에 들어가면 대부분 어르신들이 아주 반가워하면서 저를 맞아준다.
 그 중 한 할머니는 "아이고, 동상(동생) 왔어?"하시며, 두 팔을 번쩍 들고 얼굴을 활짝 편다. "할머니, 제가 동생 맞아요?"하고 말씀을 드리면, 그 할머니는 "내가 동상도 몰라볼까봐!"하시며 자신 있어 한다. 난 아니라고 말할 사이도 없이 그 할머니 동생이 돼버린다.
 다른 어르신에게 물어봅니다. "할머니, 제가 누구여?" "누구긴 누구여, 오빠지." "제가 오빠 맞아요?" "아! 그려 맞아." 팔십이 넘은 할머니는 아직도 새파란 제게 오빠랍니다. `나이 오십도 되기 전에 팔십 넘은 동생을 두다니….`
 또, 한 할머니에게 묻습니다. "할머니, 내가 누구여?" "서방님!" 이를 어쩌나! 뵐 적마다 "신부님"이라고 가르쳐 드려도 계속 서방님이란다. 진짜 서방님이 들으면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싶어, 또 다시 제가 누군지 가르쳐 드린다. "할머니, 전 서방님이 아니고 신부님이여!" "할머니, 따라해 봐요. 신부님!" 할머니는 "신부님!"하고 따라하신다. 이제 됐나 싶어 다시 묻는다. "할머니, 제가 누구여?" 할머니는 자신 있게 "서방님!"하고 답변한다. `그래 오늘도 난 팔십이 넘은 할머니 서방님이구나!`
 한 할머니는 하루 종일 "아버지, 아버지!" 소리만 한다. "제가 누구여?"하고 물으면 아버지라고 한다. 내가 들어서기만 하면 "아버지, 아버지!"하시며 내게 다가온다. `우와! 내가 칠십이 넘은 딸을 두었다니…." `그 할머니의 아버지이면 내 나이는 도대체 몇인가? 아이고 나도 모르겠다. 오늘은 그냥 그 할머니의 아버지가 되자.`
 그날만 해도 전 누군가의 동생, 오빠, 서방님, 그리고 아버지가 됐다. 어르신들이 저를 부르는 호칭은 그때그때 다르다. 그날 내게 붙여진 호칭 이외에도 아저씨와 선생님, 주인, 그리고 가끔은 신부님으로 불리기도 한다. 저를 신부님이라고 불러주시면 손도 더 오래 잡아주고, 숨겨 뒀던 사탕 하나라도 더 드리는데 그 말은 어쩌다 듣는다. `내가 사탕 살 돈이 없을까, 싶으셔서 그러시나?`
 어르신들이 여러 호칭으로 나를 부를 때마다 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한다. 사제로서 세상 안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게 되는 기회다. 모든 사제가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적어도 내게 있어 사제는 만인의 동생이요, 오빠요, 서방이요, 아버지로 살아야 한다. 어르신들은 내가 사제답게 살 수 있도록 깨우쳐 주는 스승이다. 잘 살건 잘 못살건 내가 사제로 살아가는 것은 이런 어르신들의 가르침 때문이다. `어르신들, 제가 어르신들의 동생이요, 오빠요, 서방이요, 아버지로 늘 남을 수 있도록 오래 오래 사세요. 그리고 신부님으로 많이 불러주세요. 저 사탕 살 돈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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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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