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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웃음 파는 할머니

최정묵 신부(청주교구 지현카리타스노인복지센터 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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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있는 요양원에는 작은 볼풀장 안에서 고무공과 더불어 사는 할머니 한 분이 있다. 할머니는 고무공을 담요로 덮어 놓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공을 먹어보라고 권하기도 하고, 가끔은 사라고도 한다.
 어느 날 할머니가 이 고무공을 담요로 덮어놓았다. 그것을 보고 할머니에게 물었다. "할머니, 이거 왜 이렇게 담요로 덮어 놓으셨어요?" "왜긴 왜여 마르지 말라고 덮어 놓았지." "할머니, 이게 뭔데요?" "사과지 뭐여." "할머니, 사과 한 개에 얼마인데요?" "한 개에 1만 원"하며, 할머니는 환하게 웃었다. "할머니, 너무 비싸요. 조금만 깎아 주시면 안 될까요?" 할인 판매를 하지 않는 할머니는 "싱거운 소리 그만하고 얼른 사가!"하고 말했다. 그 날 난 할머니 사과(?)가 너무 비싸 살 수가 없었다.
 이튿날 다시 방에 들어가 그 할머니를 만났다. 여전히 볼풀장 안에서 고무공을 만지작거리며 앉아 있다. "할머니, 사과 사러 왔어요." "사과가 어디 있어?" "사과 여기 있잖아요?" "이게 무슨 사과여 감이지." "어제 사과라고 하셨잖아요?" "내가 언제 사과라고 했어, 감이라고 했지." 할머니가 우기기 시작하면 아무도 말리지 못한다. 그래서 난 그걸 감이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할머니, 감 하나에 얼마에요?"하고 묻자, 그 할머니는 "감이 어디 있어?"하고 대꾸한다. "여기 있잖아요"하니 "이게 무슨 감이여"한다. 난 어제에 이어 오늘도 할머니에게 지고 만다.
 난 할머니와 함께 어제도 오늘도 신나게 웃는다. 할머니는 과일 대신 웃음을 팔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공짜로 말이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웃을 일이 많지 않다. 이런 세상에서 웃을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복이다. 오랜만에 나를 본 사람들은 내 얼굴이 참 좋아졌다는 말을 한다. 특별히 좋은 것 먹는 것도 아니고 얼굴을 가꾸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얼굴이 좋아진 이유는 바로 웃음 때문이다.
 지금 이 시간에도 과일(고무공)을 팔고 있는 할머니 모습이 떠올라 웃음이 나온다. 조금 있다가 다시 올라가 오늘은 무엇을 파실 것인지 여쭤봐야겠다.
 오늘은 할머니가 고무공을 배라고 할지, 복숭아라고 할지, 아니면 물어보는 내게 그것도 모르냐고 핀잔을 할지, 은근히 기대된다. 나에게는 할머니가 파는 것이 어떤 것이라도 상관없다. 고무공을 사과라고 할 때도, 감이라고 할 때도 난 늘 웃음을 샀다. 난 오늘도 할머니에게 웃음 한 보따리를 살 것이다. 웃음이 필요한 분은 언제든지 와도 좋다. 돈이 없어도 할머니에게서 웃음 한 보따리를 살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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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0-0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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