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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안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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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하나원을 퇴소하고 인천 한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새터민 여성과 함께 기본적인 생필품을 구입하러 대형마트에 갔다. 그는 생전 처음 와보는 `마트`의 어마어마한 규모에 놀라고, 진열된 상품 종류가 워낙 다양하고 많은데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많은 사람들 틈에서 행여 길을 잃어버릴까 옆에 꼭 달라붙어 다니던 그가 흑설탕을 5㎏짜리 대형포장으로 구입했다. "설탕이 왜 이렇게 많이 필요하냐?"는 물음에 "수녀님은 몰라도 된다"며 깔깔거리고 웃기만 했다.

 결국 그는 무척 궁금해 하는 나에게 흑설탕이 각질제거에 효능이 있어 세수할 때 얼굴에 문지르면 피부가 부드러워진다고 살짝 귀띔해 줬다.  `녀성은 꽃이라네. 생활의 꽃이라네. 한 가정 알뜰살뜰 돌보는 꽃이라네. 정다운 안해여, 누나여, 그대들 없다하면 생활의 한자리가 비어 있으니….`

 북한에서 즐겨 부르는 `녀성은 꽃이라네`라는 노래의 한 구절로 여성이 가정에서 차지하는 지위와 소중함을 노래하고 있다. `아내`의 옛말인 `안해`는 `집안의 해`라는 뜻으로 북한에서는 아직도 `아내`를 `안해`라고 부른다. 꽃으로 비유하는 노랫말과 달리 북한에서 온 새터민 여성들의 삶은 남한에 와서도 여전히 고달프기만 하다.

 북한 여성들은 매우 근면하고 생활력이 강하다. 특히 국내에 정착한 새터민 여성, 즉 `안해`들이 북한에 두고 온 가족, 특히 자녀를 데려오는 비용을 마련하려고 허리띠를 졸라매고 먹을 것, 입을 것을 아껴가며 돈을 모으는 모습을 보면 눈물이 날 정도다. 버스비를 아끼려고 몇 정거장씩 걸어 다니는 것은 기본이고, 심지어 내게 전화를 할 일이 있을 때도 요금이 많이 나올까봐 신호음이 울리면 끊고는 내가 다시 걸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도 있다.

 `안해`들의 고생은 자녀를 데려온 후에도 계속된다. 특별한 기술이 없는 새터민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초콜릿 포장이나 휴대전화 부품 조립 같은 단순부업이나 음식점 주방에서 하루 종일 설거지를 하는 허드렛일뿐이지만 가족을 위해서라면 제 한 몸 망가지는 것은 개의치 않는다. 자녀들과 몇 년 동안 떨어져 있으면서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것을 보상하려는 듯 힘들게 번 돈으로 철없는 아이들이 해달라는 대로 고가의 옷이나 휴대전화를 사주기도 한다.

 새터민 여성들의 삶은 이처럼 치열하면서도 따뜻하다.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닌, 가족을 위한 희생이기에 그렇다. 그들의 강인한 생활력과 가족에 대한 애틋한 정은 남한에서는 조금씩 잊혀가는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일깨워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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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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