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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당신 마음대로 바꾸시는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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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저입니까?"

 유학 후 신학교에 부임해 7년 반 동안 소임을 마치고 본당 주임신부로 발령받았을 때 느낌이었다. 첫 본당 주임신부로 나가는 것이니, 평범하고 비교적 안정된 작은 본당으로 나가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이 허사가 돼버렸기 때문이다. 나의 첫 주임신부 부임지가 된 가회동본당은 1954년에 미군 원조로 지어진 소위 밀가루성당(?)인데다가 붕괴위험이 있어 당장 지어야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하필이면 주임 경력도 없는 내가 왜 성당을 지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납득이 안 됐다.

 물론 지금은 아주 기쁜 마음으로 주어진 일에 충실하고 있다고 나름 생각하지만 처음에는 의식 안에서의 `순명`과 무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거부` 사이의 갈등을 피할 길이 없었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주에 밝히기로 하고 우선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인간 계획을 수포로 돌리시는지를 먼저 언급하고 싶다.

 신학교에서 신학생들과 함께 살면서 서울대학교에 다니는 바람에 더러는 오해도 받았다. 왜 신부가 세속 공부를 하는가 하는 의심스러운 시선이 그것이었다. 인문대학원 박사과정에 입학할 당시에 나는 우리 교회 안에 보물이 많이 있으나 우리 교회 언어로만 이야기하면 세상 사람들은 관심도 없고 귀를 기울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앞으로는 교회도 세상 언어로 세상에 다가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 언어는 심리학적 언어, 사회학적 언어, 철학적 언어 등 다양할 수 있다. 나는 교회 안에 주님께서 맡기신 보물을 세상 언어로 말하고 싶었다. 처음에는 종교심리학을 전공하려 했으나 이미 캐나다에서 현대(contemporary)영성을 공부했고 그것을 포스트 모더니티의 문화 안에서 어떻게 이야기할 것인지에 관한 논문을 쓰고자 했다. 그래서 자비를 들여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논문제출시험을 통과한 후 1차 논문심사(proposal)까지 통과된 상태였다. 그런데 가회동본당 주임신부 발령은 이 모든 것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성전을 지으며 동시에 논문을 쓸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내 노고는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일까? 사제양성이란 단지 수업시간이나 면담을 통해서만 이뤄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함께 사는 사제들의 삶을 통해 이뤄지는 간접적 교육 효과도 무시하지 못할 것이다. 아는 것이 적으면 그것이 전부인 줄 알지만 아는 것이 많을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공부란 죽을 때까지 하는 것`이라는 것을 신학생들에게 삶으로 보여줬다면 그것으로 충분했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것을 중단하고 새로운 삶, 즉 주임신부로서 성전을 짓는 일에 몰두하게 됐다.

 이렇게 주님께서는 인간 계획을 아무런 동의 없이 당신 마음대로 바꾸시고 그 안에서도 의미를 찾게 하신다.

송차선 신부(서울대교구 가회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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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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