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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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내 안에 있는 지옥과 천당

송차선 신부(서울대교구 가회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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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회동본당에 처음 발령받았을 때 이상하게 편두통이 왔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정도로 머리가 아팠고 위궤양까지 얻어 밥을 제대로 못 먹을 지경이었다. 비교적 건강하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는데 "내가 갑자기 왜 이런가?" 이유가 없을 리가 없었다.
 피할 수도 없는 숙명처럼 다가온 성당 짓는 일. 하지만 예전에 공부했던 건축학은 이미 나에게는 쓰레기가 된 지 오래다. 사제가 되겠다고 신학교에 입학할 당시에 세속의 모든 것을 정리했다.
 그런데 다 버렸고 그래서 잊어버린 건축이라는 녀석을 다시 쓰레기통에서 꺼내서 먼지를 털어야 하는 상황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사제로서 거룩하게 살고 싶은 영적 욕구는 거친 건설현장에서 무참하게 무너져 내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도 싫었다. 직장 경험이 있는 나로서는 돈 벌며 세상 살아가는 일이 그리 녹록하지 않음을 알고 있는 터라 세상을 살아가는 평신도를 독려해가며 성전을 지어야 하는 상황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의식적으로는 당연히 순명한다고 여겼지만 무의식 안에서 일어나는 거부가 나를 괴롭혔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의식과 무의식의 괴리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하느님께서 나를 여기에 보내실 때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부임 후 우선 본당에 관한 자료와 본당지역 역사와 관련하여 용역을 주어 연구된 문헌들을 찾아내어 검토한 결과 놀라운 사실들을 발견했다. 그 중 하나는 1795년 4월 5일 부활대축일에 북촌에 있던 최인길 마티아의 집에서 주문모 신부의 집전으로 조선 땅에서 첫 미사가 봉헌됐다는 것이다. 그러한 북촌 한 복판에 가회동본당이 있다. 더구나 경복궁과 창덕궁이라는 두 궁궐 사이에서 초대교회의 많은 신앙인들과 궁녀들이 신앙을 받아들였고 그 궁녀들 중에서는 성인 세 명이 탄생했다. 그 지역이 바로 가회동본당이 있는 곳이고 북촌한옥마을이다.
 그러니 가회동본당은 어디나 있는 평범한 성전이 아니라 초대한국천주교회의 사적지로서 기념비적으로 지어야 마땅했다.
 이렇게 중요한 성전을 짓는다는 소명과 함께 주님께서 도아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생기니 흥이 저절로 났다. 사명감이 벅차올랐던 내게 염려가 됐는지 소박하게 지으라는 조언을 하는 분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기우일 것이다. 왜냐하면 새로 지어질 성전이 소박하지 않고 화려하면 주변과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은 처음 발령받았을 때와 바뀐 것이 전혀 없이 똑같다. 그러나 처음에는 편두통과 위궤양으로 고통스러웠던 지옥이었다면, 지금은 행복하게 일을 받아들이는 천당인 셈이다. 주님의 뜻을 찾고 그것을 받아들이니 지옥이 천당으로 바뀌었다. 과연 지옥과 천당은 대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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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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