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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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송차선 신부(서울대교구 가회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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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을 헐고 다시 지을 때 기존 집기류와 비품을 어찌할 것인지가 큰 문제 중 하나일 것이다. 더구나 성물 처리는 가장 논란이 많다고 한다. 성물은 기증자 의향대로 처리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게 경험 많은 선배 신부님들의 일반적 의견이어서 그렇게 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가장 큰 문제가 제대의 해결이었다. 제대를 기증한 분은 타 본당에서 그 제대를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고 스페인으로 떠났다. 그래서 새로 분당하는 서울대교구 모본당에 주기로 결정했다. 그랬더니 몇몇 신자들에게서 예상하지 못했던 난리가 났다.
 "그게 얼마나 비싼 건데 남에게 줍니까?" "제대 처리가 뭐 그리 급하다고 그렇게 서둘러 줘야 합니까?" "새 성전에 다시 사용하면 안 됩니까?"
 하도 반발이 심해서 제대만큼은 일단 보관하기로 했다. 부대비용이 들더라도 하자는 대로 하는 것이 조용할 듯해서 그대로 두고 봤지만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왜 자꾸 움켜쥐려고만 하나? 더 좋은 것을 주님께서 주고 싶으셔도 쥐고 있는 것이 있어서 그것 때문에 안 주시면 어쩔 것인가. 그러면 나는 사목자로 움켜쥐라고 가르쳐야 하나, 믿음을 가지고 움켜쥔 것을 놓아야 한다고 가르쳐야 하나.
 마침내 사제관도 수녀원도 사무실도 이전했다. 이삿짐을 나를 때 쇠파이프가 위에서 미끄러져 내려 내 코를 살짝 스치며 바닥으로 떨어졌다. 몇 mm만 안으로 떨어졌으면 내 코는 없어졌을 것이다. 놀란 봉사자 형제님이 말했다. "신부님 더 이상 일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본당의 모든 살림과 온갖 것들이 창고로 다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한숨은 더 나왔다. 어떤 것들은 창고에 1년 이상 두면 녹슬거나 못쓰게 될 것들이었다. 왜 저런 것들을 나누고 베풀지 못하는 것일까.
 자신이 쓰고 남는 것을 남에게 주는 것은 나누고 베푸는 것이 아니라 `처분`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 주기가 아깝고 나에게도 필요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더 필요한 사람에게 전해질 때 참된 나눔이고 베풂이 아니겠는가? 내 것 네 것이 어디 있는가. 모든 것을 하느님이 내셨으니 하느님 것이고 나는 잠시 사용할 뿐인데 내가 사용하지 않으면 내어놓을 수 있어야지, 왜 베풀지 못하는가.
 물론 보존해야 할 것과 재활용 가능한 것은 당연히 보관해야한다. 하지만 나중에 결국 처분될 것들이 창고로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이렇게 많은 생각이 들었다. 이사하고 철거를 시작하면서 사목자의 이상과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신자들 의견을 조율하기는 결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 더 큰 일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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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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