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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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가회동본당 신자들의 저력

송차선 신부(서울대교구 가회동본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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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당은 완전히 분해됐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땅이 작아서 전체를 지하 3층까지 파야 한다. 그러니 사무실까지 몽땅 다 이사를 나와야 했다. 평일미사 공간과 주일미사 공간이 다르고 사제관, 수녀원, 본당사무실이 모두 떨어져있다. 웬만한 단체회합도 개인 집에서 해야 하는 상황이다.
 다행히 평일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본당 앞에 있는 노틀담 수녀회에서 교육관을 제공해줬고 주일미사를 위해서 재동초등학교 강당을 빌렸다. 수녀회 사정을 고려해야 하기에 평일미사도 우리가 하고 싶은 시간에 할 수 없다. 주일미사를 드리는 강당에서는 미사 전 의자며 제단이며 모두 정돈을 해야 하고, 미사 후에는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싹 치워 원상복귀를 해놔야 한다. 노령화된 본당에서 일 할 사람이 부족한 것은 큰 문제가 아닐지 모르겠다. 오히려 노인들이 엘리베이터 등 기계의 도움 없이 3층까지 오른다는 것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실내화를 신고 사용하는 강당이라 덧신을 신고 벗어야 하는 번거로움도 있다. 그리고 장례가 나면 큰일이다. 그래서 농담으로 이야기한다."기도하세요. 성전이 지어질 때까지 죽으면 안 돼요."
 어디 남의집살이를 내 집에 사는 것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당연히 불편하고 힘들고 어려운 점도 많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러한 상황이 더 좋다고 신자들을 위로했다. 그럴수록 주님의 사랑을 더 받을 수 있을 것 같아서다. 자녀 중에서도 편안하고 안정되고 잘 나가는 자녀보다 힘들고 어려운 자녀에게 애잔하고 사랑이 더 가는 것 아니겠는가. 우리도 안정됐을 때보다 힘들고 어려울수록 주님께 사랑을 더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위로가 되고 기쁨이 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다. 우리가 주님의 사랑을 한껏 받을 수 있다면 조금 불편하고 힘들어도 참자는 취지였다. 그리고 평일미사를 봉헌하는 수녀원 교육관은 마치 피정와서 미사를 드리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매일 피정하는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자고 했다.
 성전송별음악회, 거동이 불편한 교우들과 함께하는 미사, 기공식, 성전송별미사를 순서대로 마치고 마침내 남의집살이가 시작되는 첫 주일이 돌아왔다. 아무래도 상당한 교우들이 빠져나가거나 적지 않은 신자들이 이웃 본당에서 미사를 드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예상은 완전히 뒤집어졌다. 첫 주일미사에는 예상보다 더 많은 교우들이 와서 봉사자들이 준비한 의자가 많이 모자라 무척 당황하기도 했다. 이와 같이 열악한 환경도 신앙생활에 큰 장애가 되지 않았다. 이것이 가회동본당 신자들의 저력이고 새로운 성전을 짓는데 가장 큰 힘이며 희망일 것이다. 순간, 주님께서 어떠한 어려움도 물리쳐 주시고 반드시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이 불끈 솟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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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1-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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