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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직 현장에서] 거저 받은 모든 것

김희경 수녀(그리스도의 성혈흠숭수녀회, 빛누리 다문화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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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로 접어들 무렵 이웃 본당 교우님이 "겨울 올 때까지 내내 드세요"하시며 우리 집 앞마당 텃밭에 상추를 정성껏 심어주셨다. 농사 경험이 없어 잘 키울 수 있을까 염려했는데 어느새 싱싱하고 탐스럽게 잘 자라줬다. 정성껏 물을 주고 거름도 묻어 주면서 상추를 키우는 재미가 쏠쏠하다. 볕이 좋아 물만 줘도 잘 자란다. 이것이 농사짓는 재미인가 싶다.
 반찬이 마땅치 않을 때도 상추만 있으면 풍성한 밥상이 된다. 식사를 마치고 차 한 잔을 마시며 텃밭에 초록빛 어린 상추를 보면 마음도 초록빛으로 정화되는 듯하다.
 센터에 봉사하러 오신 자매님들도 "상추가 참 맛있겠네요", "어쩜 이리 싱싱할까?"하며 감탄을 늘어놓는다. 원하는 만큼 따서 가져가시라고 비닐봉지를 건네면 몇 번 거절하다가 이내 환한 미소를 지으며 상추를 따서 담는다. 항상 시간과 노력, 정성을 나눠주시는 봉사자 자매님들에게 감사를 드려도 모자랄 지경인데 상추를 나눠드린 덕분에 오히려 내가 인사를 받아 송구할 따름이다.
 어느 날 같은 본당 출신 새내기 수사 신부님이 우리 다문화센터에 들렀다. 갑작스런 방문이라 미리 식사 준비를 하지 못해 이것저것 집에 있는 반찬으로 밥상을 차렸는데 제법 풍성해 보였다.
 "간단히 먹으면 되는데 뭘 이렇게 많이 차리셨어요."
 "이것은 누가 갖다 주셨고, 저것은 어느 분이 보냈고…. 그러고 보니 정작 돈 주고 산 것은 없네요."
 "그렇죠! 우리가 뭘 살 때 내는 그 돈 마저도 거저 얻은 것이죠."
 "그래, 모두 탁발인거네요!"
 나이도 동생뻘이고 수도 연륜도 짧다고 여긴 새내기 신부님의 지혜가 담긴 한 마디에 한 수 배우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박한 정성이 담긴 밥상마저도 일상에서 거저 받은 것임을 새삼 깨달으니 그저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자기 잇속만 챙기려는 세상 사람과 달리 나누는 기쁨을 즐기며 사는 이들을 만날 때 참된 삶의 지혜를 배운다.
 우리 다문화센터를 찾는 이주민 여성들은 대부분 천주교 신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위해 조건 없이 봉사하는 우리 수도자들이 고맙고 참 신기하단다. 이주민 여성들도 언젠가 거저 받은 모든 것에 대한 감사의 응답을 이해하게 되리라 믿는다.
 우리와 같은 사람의 모습으로 오신 아기 예수의 사랑을 배우고 그 체험을 나누는 이들이 저마다 그리스도의 미소 안에서 위로와 격려를 얻으리라 믿고 또 기도한다. 거저 받은 모든 것을 나누는 `사랑 나눔 축제`를 경축하며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성탄을 맞이한다.



[기사원문보기]
가톨릭평화신문  201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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