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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목일기] 깨 다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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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노동을 통해 자기 수련을 하고, 세상에 필요한 봉사를 하고, 생계를 유지한다. 교회도 노동을 중요한 덕목으로 생각한다. 하느님의 재창조사업에 노동을 통해 참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노동은 회피하고 싶고 비천하다고 여겨지는 활동이다. 또 노동의 결실이 노동하는 사람의 것이 되지 못할 때가 잦아 점점 대접받지 못하는 현실이다.

 신학교 시절에는 동아리에 들어 일주일에 한 번 봉사활동을 하며 `강한` 노동을 하곤 했지만 정작 사제가 된 후에는 머리와 입으로 하는 `약한` 노동만 하고 있다. 그 당시 봉사를 하며 느낀 땀의 가치와 보람, 기쁨 덕에 사제가 돼서도 노동을 자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했다.

 그런데 내게도 다시금 노동의 기회가 찾아왔다. 함께 노동사목 실무자로 일했던 분이 지난 해 의령으로 귀농한 것이다. 그 덕에 한 달에 한 번꼴로 그곳에 농촌체험을 하러 갔다. 주로 밭농사라 앉아서 몸을 구부려가며 일하곤 하는데 밭일이 이렇게 힘든 줄 몰랐다. `할 일 없으면 농사나 짓지`하는 사람이 있으면 뒤통수라도 때려주고 싶은 마음이다. 또 농사로 평생을 살아오신 분들이 새삼
존경스러워졌다.

 하루는 왕년에 풀 베던 실력을 살려 힘차게(?) 깨를 수확하다가 농사일을 가르쳐주시던 마을 어르신께 "깨 다 떨어진다!"며 호되게 야단을 맞았다. 깨는 조금만 충격을 줘도 떨어지기에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길로 아주 조심히 다루기 시작했지만 서툰 솜씨 탓에 괜히 더 일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가 들었다. 밭주인에게 "내가 이리 일을 못하는데 계속 와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도움 준다 생각하지 말고 신부님 스스로를 위해 오시라"는 답이 돌아왔다.

 사실 일상으로 돌아오면 노동은 나와는 별개의 것이 된다. 명색이 노동사목을 하고있는 나 자신도 그렇다. 하지만 나와 함께하는 후배 신부는 노동의 가치를 잊지 않기 위해 자신의 방 청소와 빨래를 직접 한다고 했다. 처음 그 이야기를 듣고는 `뭐 그렇게까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바른 정신을 유지하기 위해 `몸의 수련`을 실천하는 모습이 점점 좋아 보였다.

 그래서 나도 소박하게나마 실천을 시작했다. 예전보다 더 열심히 방 정리를 하고, 대중교통 이용을 늘리고, 주위 노동의 모습을 마음의 눈으로 보며 몸소 느끼고 있다.

 올해도 봄이 오면 농촌체험을 시작하려고 한다. 노동을 통해 자연 속에 내가 있음을 체험하면 그게 바로 훌륭한 기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농촌이든 사업장이든 노동이 대접받고, 노동으로 영육 간 풍족이 오기를 기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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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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