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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속 영성 이야기] (41) 이 또한 지나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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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다니던 직장에서 나를 상당히 힘들게 했던 상사가 있었다. 당시 나는 비정규직이었는데, 그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시키는 건 뭐든 열심히 했다. 그런데도 그에게선 매일 같이 불호령과 짜증이 쏟아졌고, 그것을 견뎌야 했던 나는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내가 정규직이 되면 달라질 수 있을까, 아니면 이직을 해야 할까…. 정규직 전환이 안 되고 이직도 쉽지 않은 상황이 지속되면서 나는 매일매일 심란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러면서 하느님께 간절하게 기도도 많이 했었다. 그 사람이 조금이라도 변하게 해달라고, 나를 힘들게 하는 것을 내가 이겨낼 수 있게 해달라고, 빨리 이 순간이 지나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러나 내 간절한 기도와 달리 그 상사는 전혀 변함이 없었고, 그를 상대하는 내 마음도 계속해서 힘이 들었다. 무엇이 문제였던 것일까. 우리의 기도를 귀 기울여 들으시는 하느님이신데, 왜 상황이 바뀌지 않는 것일까. 왜일까….

그러던 중 그에게 또 심한 질책을 당하고 있을 때였다. 우연히 창밖을 봤는데, 하늘 저 한쪽에 무지개가 떠 있었다. 그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하늘 속 무지개는 너무나 예쁘고 평화로운데, 그에 비해 내 상황은 너무 슬프고 비참한 것 같았다. 그러면서 이상하게 한편에서 위로 같은 것이 느껴졌다. 지금 내 상황이 어떻든지 간에 하늘엔 무지개가 떠 있구나, 그것이 왠지 위안과 희망으로 다가왔다. 무지개가 내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별것 아니라고, 이 순간도 지나간다고, 괜찮다고….

그날 저녁 성찰 기도를 통해 하루를 돌아보는데, 그 무지개가 하느님처럼 다가왔다. 내가 힘들어하는 순간에 하느님께서는 나를 홀로 버려두신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하셨고, 나를 위로하셨으며, 내가 한발 물러나 상황을 바라보기를, 좀 더 자유로워지기를 응원하셨음이 다가왔다. 그러니 마음 안에서 다시 한 번 위로와 감사함, 작은 희망 같은 것이 올라왔다.

고통의 순간, 하느님께서는 어떻게 우리와 함께하실까. 고통이 되는 상황 자체를 없애려고 애쓰시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우리와 함께하시면서 함께 아파하시는 것 같다. 그러면서 지친 우리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고, 우리가 더 자유로워지고 힘을 내기를 바라시는 것 같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문제 해결사가 아니라 우리 고민과 걱정을 함께 고민하시는 엄마 같은 분이시다.

결국 나는 몇 년 후 정규직이 되었고 승진도 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는 아예 좀 더 마음 편한 곳으로 이직도 하게 되었다. 예전에 과연 그런 날이 올 수 있을까 했던 것이 정말 현실이 되었다. 이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예전에 내가 했던 간절한 기도를 잊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원하시는 곳에 나를 새로운 도구로 쓰려고 하신다는 것을 깊게 고백할 수 있었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내 맘 같지 않고, 내 맘대로 되지 않을 때가 너무나 많다. 직장도 그렇고, 돈 문제도 그렇고, 가족도 그렇고, 하물며 나 자신도 그렇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까.

무엇보다 우리가 겪는 상황을 하느님의 영원함 안에서 바라보도록 애써야 할 것 같다. 그분의 시간 안에서, 그분의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지금의 고통스러운 상황도 조금은 달리 보일 수 있을 것이다. 그분과 함께 한발 물러나 본다면 좀 더 자유로워지고,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그분의 위로와 희망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울러 그분께서 나를 위해 열심히 일해 가신다는 것을 신뢰하면서 가야 한다. 인생에서 때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비가 그치기를 견뎌야 하는 시간도 있다. 그러나 아무리 힘든 시간일지라도 분명 지나갈 것이다.

좋아하는 생활 성가 중에 ‘아무것도 너를’이란 곡이 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가는 것, 다 지나가는 것…. 하느님은 불변하시니 인내함이 다 이기느니라….”




한준 (요셉·한국CLC 교육기획팀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0-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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