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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살이 신앙살이] (614·끝) 어느 사제의 아름다운 데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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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친한 교구 신부님에게 일 관계로 물어볼 것들이 있어서 문자를 보낸 적이 있습니다. ‘신부님, 혹시 통화가 되나요?’ 10분 뒤에 그 신부님으로부터 답장이 왔습니다. ‘지금 남대문파 여인과 데이트 중. 저녁에 통화 가능.’ 헐… ‘남대문파’, ‘여인과 데이트’ 이게 뭐지…! 암튼 그날 저녁이 되자 신부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어이, 강 신부.”

“네. 신부님.”

나는 그 신부님과 전화 통화를 하면서 여러 조언을 얻었습니다. 그렇게 20분 정도 대화를 한 후, 신부님에게 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데이트 어떠셨어?”

“무슨 데이트?”

“오전에 저에게 문자 보내셨는데. 남대문파 여인이랑 데이트 중이라고.”

“아! 그거. 오늘 어머니랑 함께 있었는데, ‘남대문파’는 우리 어머니께서 남대문시장에서 물건 사는 것을 좋아하셔서 가족들이 붙여준 별명이야. 그리고 어머니께서 지금 요양원에 계시는데, 며칠 전 요양원 원장 수녀님으로부터 어머니 겨울옷이 필요하다며 전화가 왔었어. 그래서 오늘 오전에 요양원에 가서 어머니를 모시고 나와 남대문에 옷 사러 갔다 온 거야.”

“그럼 어머니 옷을 함께 사러 간 거예요? 신부님이 여자 옷에 대해서도 잘 아세요?”

“뭐, 알고 모르고가 어디 있겠어. 그냥 어머니랑 남대문을 천천히 돌아다니면서 구경도 하고. 오늘은 어머니가 털모자를 사고 싶다고 해서 모자 가게에 들어갔어. 거기서 어머니는 이런저런 모자를 써 본 다음 나에게 ‘이거 어때, 저거 어때?’하고 물어보시면, 내가 진지하게 ‘좋다, 어떻다’ 말해 주고 그랬지. 그럴 때마다 어머니가 무척 좋아하셔. 겨울옷을 사려고 외출을 했지만, 어머니에게 어울리는 옷이 없어서 사지는 못했어. 그렇게 어머니랑 남대문 시장을 구석구석 돌아다니다가 요양원에 모셔다 드리고 온 거야.”

“정말 효자가 따로 없네요.”

“효자는 무슨, 그냥 어머니랑 하루를 보내는 거지. 오늘은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셔다드리는데, 대문 앞에서 나를 빤히 쳐다보며 이런 말을 하시더라. ‘아들 신부님, 오늘은 너무너무 행복했어요. 오랜만에 우리 아들 신부 손잡고 걷기도 하고, 팔짱을 끼고 돌아다니고. 너무나도 행복한 시간을 보냈어요. 아들 신부님, 정말 고마워요.’ 그 말을 듣고 있는데, 마음이 짠하더라. 사실 어머니를 요양원에 모신 후, 어머니께 자주 면회를 가겠다, 어머니가 더 나이 드시기 전에 종종 외출을 해 드려야겠다, 그런 결심은 했지만 뭐가 그리 바쁜지 그 약속을 못 지킬 때가 많아.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어머니를 모시고 데이트를 하려고 다짐은 하지만 그것도 노력 중이지. 아! 맞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어머니와 전화 통화는 해. 그런데 별로 중요한 이야기도 아닌데 내가 수다를 떨면 어머니가 그렇게 좋아하셔.”

그 신부님과 전화를 끊고, ‘어머니’라는 단어를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나 역시 제주도에 계신 어머니 얼굴을 떠올려 보며, 거리라도 가까우면 자주 찾아가 볼 텐데 1년에 열흘 휴가 때에만 뵐 수 있어 아쉬워합니다. 그러다 문득, ‘어머니’라고 부르면, ‘오냐, 여기 있다’ 말씀하시는 어머니가 지금 살아 계신 것만으로 행복임을. 주변에 많은 분들은 ‘어머니’를 목 놓아 불러도 대답이 없다고 말하기에! 오늘은 집에 전화를 해서 어머니와 수다를 떨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영원한 연인인 이 땅의 모든 어머니들이 영육 간에 건강하시기를 소망하며, 돌아가신 어머니들은 하느님 품에서 평안히 잠들어 계시기를 기도해 봅니다.

※그동안 ‘세상살이 신앙살이’를 사랑해 주신 독자들에게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의 격려 덕분에 지금까지 글을 쓸 수 있었습니다.






강석진 신부(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1-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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