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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 니콜라오 주교 (12월 6일)

270?~341년쯤, 리키아 출생, 주교, 산타클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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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오 성인은 대중에게 산타클로스로 더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성탄절 때마다 어린이에게 베푼 자선과 사랑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에서 신터클레스(Sinter Claes)라고 불린 성인이 본격적으로 산타클로스(Santa Claus)로 알려진 건 네덜란드계 프로테스탄트 신자들이 미국에 정착하면서입니다. 이들은 성인의 축일에 어린이에게 선물을 나눠주는 관습을 소개하고, 이를 성탄 전야 행사와 함께하기 시작했습니다. 산타클로스의 붉은색 옷도 사실은 성인이 입던 빨간색 주교 복장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성인은 오늘날 지중해 연안 튀르키예 남서부 지역에 해당하는 소아시아 리키아 지방의 항구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성인의 생애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지만, 성인은 전설과 비공식 전기 등을 통해 오래전부터 사람들의 큰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그는 유복한 집안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았습니다. 일찍 부모를 여의고, 막대한 재산을 물려받은 성인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에 헌신했습니다. 어려운 이웃을 더 적극적으로 돕기 위해 사제가 될 결심을 할 정도로 따뜻한 마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성인이 사제품을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미라의 주교가 선종했습니다. 주교들은 후임을 찾기 위해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어느 날 밤,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내일 아침 성당에 맨 먼저 들어오는 ‘니콜라오’라는 자를 뽑아라.” 실제 다음 날 아침 성당에 기도를 하러 갔던 성인은 영문도 모른 채 주교로 축성됐습니다. 그러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시작되면서 성인은 10여 년의 옥고를 치렀습니다. 성인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신앙의 자유가 선포된 뒤에야 풀려나 본격적으로 교회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성인의 선행에 관해서는 많은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어떤 아버지가 가난 때문에 세 딸의 결혼 지참금을 마련하지 못해 매춘부로 넘겨야 할 곤경에 처했을 때 일입니다. 이를 안 성인은 몰래 창문으로 돈을 넣어 주어, 위기를 면하게 해주었습니다. 또 기근이 든 어느 해 고약한 백정이 아이 셋을 살해한 후 소금에 절여 먹거리로 팔려고 하자 성인이 나서 어린이들을 구해냈다고 합니다.

기적도 있습니다. 기근 당시 식량을 가득 실은 여러 척의 배가 폭풍우에 밀려 미라 해안으로 떠밀려왔습니다. 성인은 각 배의 선장에게 식량을 기증해 달라고 간청해 굶주리는 이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그런데 출항 후에 식량을 살펴본 선원들은 그 양이 이전과 비교해 전혀 줄지 않았음을 발견하고 놀라워했습니다.

이 외에도 남의 죄를 뒤집어쓰고 억울하게 사형에 처할 뻔한 세 명의 청년을 구해주었고,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꿈에 나타나 모함을 받은 고관들을 위기에서 건져낸 일도 있습니다. 또 물에 빠진 선원들을 여러 번 기적적으로 구해내기도 했습니다.

성인은 교회 미술에서 주로 한 손에 세 개의 황금 구슬이 놓인 성경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성인이 행한 선행과 기적을 의미합니다. 또 비슷한 이유로 어린이와 누명 쓴 죄수, 폭풍우에 갇힌 뱃사람, 항해사, 어부, 여행자 등 다양한 계층 사람의 수호성인으로 공경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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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22-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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