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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쉬운 사회교리 해설 - 세상의 빛] 221. 복음과 사회교리(「간추린 사회교리」 138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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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80년대 격동기를 헤쳐나오는 동안 진보니 좌경이니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정치적 의도나 목적을 갖고 한 일은 없다. 가난한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 그래서 약자라고 불리는 사람들 편에 서서 그들의 존엄성을 지켜 주려고 했을 따름이다.”(김수환 추기경 이야기 「우리 곁에 왔던 성자」)


■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어른

얼마 전 어떤 성당에서 어린이 미사를 드렸습니다. 아이들에게 성당에 오면 좋은지 물었더니 좋다고 대답하더군요. 이유에 대해 물었더니 “예수님 만날 수 있어서 좋아요”라고 했습니다. 너무나 기특하고 대견했습니다. 초등학교 때부터 입시 경쟁에 시달리며 많은 학원을 전전해야 하는 요즘 아이들에게 성당 다니는 것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성당 오는 것을 기쁘게 여기는 모습에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습니다.

모쪼록 그 아이들이 훗날 훌륭한 사람이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또한 그런 아이들이 보고 배울 수 있는 어른이 돼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독자분들도 저와 같은 마음을 가지신 분들이 있겠지요? 그렇다면 그런 어른은 어떤 모습이어야 합니까?


■ 올바른 자유?

자유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큰 선물 중 하나이며, 인간은 누구나 자유를 가질 권리가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자유가 무척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릇된 방법으로, 더욱이 자신을 즐겁게만 하는 것이 참다운 자유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일찍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 현대의 일부 사조가 인간의 자유를 절대화시킴으로써 초월자에 대한 감각을 상실했음을 우려했던 것처럼 현대사회는 자유가 남용되고 있습니다.(「진리의 광채」 31항)

그 잘못된 사조란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생각, 도덕과 윤리의 경시입니다. 요컨대 자유란 아무것이나 말하고 행할 권리가 아니며, 이익과 쾌락 충족이 자유의 최종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하느님의 계시, 윤리와 도덕, 용서와 화해, 이웃사랑 안에서 실행돼야 합니다.


■ 인간과 사회 발전의 토대

지금은 과거보다 풍요로워졌고 문명과 기술도 놀라우리만치 발전했습니다. 그런데 많은 분들께서 사회와 세상이 무척 혼란스럽다고 하십니다. 심지어 점점 살기가 어렵다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지요? 그 이유는 지난 세월 동안 우리 사회가 이웃을 사랑하는 삶에 관심을 두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적어도 그것은 우리가 배운 교육 내용에서 우선순위는 아니었고 지금도 그러합니다.

현재 젊은 세대들의 고단한 삶도 수긍이 가지만 몇십 년 전은 분명 더욱 힘들었습니다. 그 속에서 서로 위해 주고 약한 이웃을 돌보자는 목소리는 힘든 시기를 견디는 원동력이자 사회가 바르게 발전할 수 있는 토대였습니다. 이제야 우리는 깨닫습니다. 서로를 돌보지 못하고 무관심하며, 자신의 욕심만을 채우는 사회는 아무것도 쌓아 올릴 수 없다는 냉정한 성적표를 말입니다. 자유와 도덕, 신앙과 하느님 가르침을 절실히 싹틔워야 합니다.


“자유의 절대적이고 무조건적인 기원은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삶 안에 자리 잡고 있으며, 동시에 삶은 자유가 지닌 한계성과 가능성을 드러낸다. 인간의 자유는 피조물인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자유는 선물로 주어진 것이며, 마치 한 알의 씨처럼 받아들여 책임감을 가지고 키워내야 하는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138항)


이주형 요한 세례자 신부
서울대교구 사목국 성서못자리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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