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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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연중 제16주일·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 - 온 세상의 할아버지·할머니를 축복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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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는 오늘 ‘세계 조부모와 노인의 날’을 제정하여 미사를 봉헌합니다. 2021년에 시작됐으니 ‘파릇’한 새내기 기념일입니다. 교황님께서는 “고독과 죽음의 고통을 겪는 노인을 위로하고” 가정과 사회에서의 역할과 중요성을 강조하시며 이날을 제정하셨는데요, 온 세상이 노인을 대할 때에 다만 숱한 삶의 고비와 난관을 견디고 이겨내신, 그 사실 하나만으로 존경심을 갖게 되기를 꿈꿔봅니다. 모든 어르신들께 어제보다 한 걸음 더, 주님과 가까워지는 축복이 있기를 기도하며 글을 시작합니다.

사실 오늘 선포되는 복음은 널리 알려진 성경의 명언입니다. 그럼에도 군중들에게는 언제나 비유로 말씀하시던 주님께서 직접, 속뜻을 풀이해주신 점에서 독특한데요. 그만큼 오늘 말씀이 소중히 다가옵니다.

물론 우리는 이 말씀의 의미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세상 종말”에 내려질 그분의 심판을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매일, 하루의 삶에서 가라지 노릇을 했던 일을 돌아보며 통회합니다. 제발 새 마음으로 복음의 씨앗을 건강하고 튼튼히 돌보아 열매를 거두는 삶을 살게 해주시길 소망하며 잠자리에 듭니다. 참 귀하고 복된 행위입니다.
한편 우리는 더 간절한 원의를 품기도 하는데요. 하느님께서 모든 것에 축복을 더해주시고 더 바랄 것이 없는 풍족함을 주시기를, 그렇게 ‘내 편이 되어 내 뜻’을 들어주시길 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께서 자신의 삶에 유리하도록 관여해주시길 바라며 하루를 시작합니다. 이 또한 틀리지 않은 믿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잘 살피면,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의 삶을 눈동자처럼 지켜보시는 분이시며 사랑으로 이끌어주고 계시는 분임을 간과한 모습임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택하신 자녀들을 외면하거나 포기하지 않으시며 당신께서 뜻하신 구원의 약속을 이루기 위해서 어떤 상황을 막론하고 꼭 이끌어 가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세상을 향한 하느님의 뜻은 때로, 두렵고 긴장되며 무서운 심판일 수 있으니까요.

그런 면에서 줄기차게 열심히 기도를 바치고 선교에도 열심을 내며 성실한 신앙생활을 한다는 자부심에 젖어, 이제 하느님께서 감동하시고 축복하실 것이라는 생각은 ‘착각’입니다. 이러한 지레짐작은 ‘스스로의 복음’에 취했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더해서 세상이 다 그렇게 돌아간다는 핑계와 남들도 다 그렇게 살고 있다는 변명 또한 모두 ‘사탄의 복음’일 뿐입니다. 이야말로 “자는 동안에” 원수인 사탄이 심어놓은 가라지의 씨앗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매일매일 기도에 정성을 들이고 더 많이 기도하면 복이 쏟아질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결단코 착한 마음으로 이웃을 위해서 자선을 많이 하는 것으로 참 행복을 누릴 것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은 모두 정의의 말씀 앞에 서 있는 존재입니다. 주님의 선언에 제아무리 강하게 반박하고 비판하더라도 예수님은 당신의 뜻을 다시, 고쳐서 말씀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이렇게 속 빈 이삭으로 살아가는 우리 모습에 애간장이 타십니다. 멀대처럼 키만 웃자라 으스대는 가라지의 꼴에 진저리를 치십니다. 때문에 오늘도, 지금 이 순간에도 아버지 하느님께 꿇어 엎드려 “몸소 말로 다 할 수 없이 탄식하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해주십니다. 우리를 위해서 쏟아내시는 하느님의 마음은 이토록 애절합니다.

성령으로 이 겨자씨만 한 믿음을 손수 키워주시니 그렇습니다. 보잘것없이 작고 허술한 믿음을 계속 응원하며 보듬어주시니 그렇습니다. 약간씩, 아주 조금씩, 변화되어 마침내 “온통 부풀어 오르는” 주님의 축복을 체험하도록 이끌어주시니 그렇습니다. 허물 많은 죄인을 주님 나라의 반석 위에 당당히 서는 은혜인으로 승격시켜 주시니 그렇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삶이란 주님께서 보내주신 ‘축복으로 가득한 종합선물 세트’라고 믿습니다.

때문에 믿음에는 매일의 삶에서 그분의 사랑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틀림없이 가라지였던 나를 이만큼 변화시켜주신 그분의 은혜에 감사드리는 마음이 소중합니다. 결국 가장 조심해야 할 믿음의 걸림돌은 이 정도라면 충분히, 그리스도인답다고 여기는 ‘자기만족’에 있습니다. 때때로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교회의 일이라는 빌미로, 똑 부러지게 일깨우겠다는 핑계로, 나와 다른 상대를 가라지 취급하는 교만한 마음에 있습니다. 타인의 허물에는 더없이 철저하면서 자신의 잘못에는 한없이 관대한 뻔뻔함이 제일 큰 문제라는 뜻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내는 삶의 모든 순간은 삶의 귀한 자료입니다. 그날, 주님 앞에서 “해처럼 빛나는” 존재로 살아갈지 “불구덩이에 던져”지는 신세로 추락할지를 결정짓는 막중한 증거입니다. 하여 주님께서는 지금을 살게 하시는 하느님 자비심에는 유예기간이 있음을 기억하라 이르십니다. 그 유예기간이 결코 영원하지 않음을 새겨 살으라 명하십니다.

부디 오늘 교회가 바치는 기도에 응답해주시어, 온 세상의 모든 할머니 할아버님들이 튼실한 믿음을 살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은혜로 거룩한 삶을 영위하시기 바랍니다. 하여 천국의 알곡으로 변화되시고, 하느님의 나라의 행복을 누리는 믿음인의 본이 되어주시길 소원합니다. 마침내 하늘나라 높은 반석에 오르는 축복의 주인공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장재봉 스테파노 신부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원장



[기사원문보기]
가톨릭신문 202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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