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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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연중 제21주일 - 베드로라는 낮은 문턱을 만들어 주신 주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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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생들은 학부 2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가는데, 저는 군대 대신 방위산업체에 갔습니다. 한마디로 방위였죠. 공장을 30개월 정도 다녔는데, 공장이 가까워서 매일 7시에 일어났습니다. 자연히 7시에 일어나는 것이 몸에 배어 습관이 됐는데요. 그 습관이 방위산업체를 마치고 본당 생활을 하면서 조금 문제가 됐습니다. 월요일 새벽미사를 나가야 하는데, 도저히 새벽에 못 일어나겠더라고요.

그래서 월요일 새벽미사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다음주 월요일이 됐는데, 또 못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다음 주가 됐는데, 안 되겠다는 생각에 밤을 새워 보려고 하다가 새벽에 잠이 들어서 또 못 나갔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 월요일이 됐습니다. 새벽미사에 나갔을까요? 예, 나갔습니다. 그런데 늦게 나갔습니다. 미사가 끝날 때쯤 성당에 도착해 보니, 신부님이 신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있었습니다.

신학생이 새벽미사를 네 번이나 연속으로 빠지고, 대단하죠? 그래도 다행인 것은 그 이후로 본당 새벽미사나 신학교 새벽미사에 늦거나 빠지지는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저에게는 새벽미사를 네 번이나 빠진 ‘전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저와 함께 사는 신학생이 새벽미사에 빠지거나 늦어도 혼내거나 화를 내지 않습니다. 새벽미사에 빠지는 신학생을 보면, ‘새벽에 일어나기 힘든 이유가 있겠지. 언젠가는 새벽에 일어나는 것에 적응이 되겠지’ 하는 마음이 듭니다.

그런데 만약 제가 아무 실수나 잘못 없이 신학생 시절을 보내고, 신부가 됐다면 어땠을까요? 새벽에 못 나오는 그 신학생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요? 아마도 이해할 수 없었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당장 혼을 내고 화를 내며 그 신학생의 잘못된 모습을 뜯어고치려 했겠죠.

비슷한 상황들을 생각해 볼 수 있을 겁니다. 학생 시절에 무슨 시험이든 1등만 한 선생님이 있습니다. 그 선생님이 공부 못하고 놀기만 하는 학생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마 힘들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또 회사를 밑바닥부터 키운 사장이 아니라, 돈으로 회사를 산 사장이 있습니다. 그 사장이 사원들을 가족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가 쉬울까요? 이익을 내지 못하고 경쟁에 뒤처지는 사원의 마음을 헤아려 줄 여유가 있을까요? 아마 없을 거란 생각이 듭니다. 또 운전도 해보지 않고 운전에 관한 법규들을 만들어 내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 이들이 운전자들의 실수와 잘못을 이해할 수 있을까요? 현실에 맞는 법규들을 만들어 낼 수 있을까요? 아마 힘들겠죠.

그렇게 시행착오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던 사람들, 높은 지위와 자리에만 앉아 있었던 사람들, 그리고 현장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다음과 같은 권한을 받았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

아마 그 사람들은 높은 기준과 이기적인 잣대, 그리고 현실성 없는 기준과 냉정하고 차가운 결정으로 공동체 구성원들을 힘들게 할지도 모릅니다. 교회를 통해 흘러나오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과 위로를 막아 버릴지도 모릅니다.

그럼 어떤 사람이 그러한 권한을 받아야 하겠습니까? 예수님은 베드로를 교회의 반석, 교회의 구심점으로 세우셨습니다. 베드로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그렇게 잘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전히 이해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어찌 보면 믿음이 온전치 않았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외면하고 모른다고까지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전과가 있는 베드로가 우리를 너무 팍팍하게 몰아붙이지는 않을 겁니다. 그는 우리의 아픔과 고통과 상처와 넘어짐을 이해할 겁니다. 우리가 성경 내용을 속속들이 알지 못하고, 고해성사 순서를 잘 모르고, 미사가 어떤 구조로 이뤄졌는지 잘 몰라도 심하게 나무라지 않을 겁니다. 이상적이고 냉정한 기준만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기준을 적용해서, 우리가 교회를 통해서 흘러나오는 주님의 사랑과 은총을 더 받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줄 겁니다.

우리도 베드로처럼 부족하고 나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들을 주님께서는 당신의 일꾼으로 쓰십니다. 더 엄격하고 까다로워지라고 일을 맡기셨을까요?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와 함께하는 사람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하느님의 은총을 더 많이 얻어 누릴 수 있도록, 나처럼 부족한 사람을 도구로 선택하셨을 겁니다.

오늘 하루, 나와 함께하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더 받아 누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주님의 종이 됩시다.


김기현 요한 세례자 신부
인천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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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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