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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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사순 제5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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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독서 예레 31,31-34
제2독서 히브 5,7-9
복음 요한 12,20-33


예수님은 씨앗을 좋아하셨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 비유에서 씨앗이 주인공일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지요. ‘씨 뿌리는 사람’의 이야기며 ‘저절로 자라나는 씨’, ‘겨자씨 비유’도 그렇고,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한 알 밀알’은 씨앗 이야기에서 독보적 자리에 앉았습니다. 이야기꾼 예수님의 말씀에서 씨앗은 생명의 근원으로, 자기희생으로, 그리고 우리네 삶에 채색되는 다양한 이야기가 되어 그림처럼 다가옵니다.

수난의 색채가 점점 짙어 가는 이때, 예수님은 ‘한 알의 밀알’ 비유를 들려주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파스카 축제를 앞두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을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비유의 말씀은 당신 생애의 마지막 주간이라는 큰 맥락 안에서 울려 퍼진 가르침임을 의미합니다. 파스카 축제를 지내러 올라온 그리스 사람 몇 명이 예수님을 뵙길 열망했고, 예수의 제자 가운데 하나인 필립보에게 만남 주선을 요청했습니다. 그러자 필립보는 안드레아와 함께 예수께 가서 그들의 청원을 말씀드립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리스 사람들을 만나셨는지에 대해서는 직접적 언급이 없습니다. 다만 만남을 주선하는 제자들의 요청을 들으시고 뜬금없는 답변을 주십니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때가 왔다” 하시고,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하시며 ‘한 알 밀알’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과 ‘영광의 때’는 의미심장한 표현입니다. 요한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영광은 십자가의 죽음과 연결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주님께서 영광 받을 시간’과 ‘한 알 밀알’ 사이에는 필연적으로 닿게 되는 의미가 형성됩니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은 땅의 이치나 자연적 섭리를 가르치기 위한 말씀도, 보편적 진리 확인을 위한 말씀도 분명 아닐 것입니다. ‘한 알 밀알’이 된다는 것은 ‘밀알’ 자체로 남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한 알 밀알만으로는 아직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씨앗이 한 줌의 흙을 만나 썩게 되었을 그때 ‘한 알’의 진가가 드러납니다. 많은 열매가 달리는 새 역사, 새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고자 하는 그 거룩함의 시작은 ‘한 알 밀알’처럼 땅에 떨어져 죽는 순간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가르침입니다.

덧붙여서 주님은, 자신을 버리지 못하여 열매 맺지 못하는 초라한 삶에 대해서도 말씀하십니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12,25) 예수님께서는 극단적 대조를 보이는 ‘사랑하다?미워하다’, ‘잃는다?보존하다’라는 동사를 사용하여 ‘열매 맺는 삶’과 ‘열매 맺지 않는 삶’의 의미를 분명히 하십니다.

그럼에도 마음이 엇갈리고 일시에 전부를 흔드는 혼란에 빠지신 예수님께서 번민 속에서 말씀하십니다. “제 마음이 산란합니다. ‘아버지, 이때를 벗어나게 해 주십시오’하고 말할까요? 그러나 저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온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와의 대면 안에서 확신과 동시에 두려움을 느끼는 양가감정을 체험하십니다. 죽음의 위협을 인지한 때에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마주할 고통이 어떤 것인지를 이러한 내적 동요를 통하여 극적으로 내보이셨습니다. 공관복음에서 나타난 겟세마니 동산에서의 그 고뇌가 요한복음의 이 말씀 저 바닥에 묻어 있는 대목입니다.

표현할 수 없는 두려움 속에서도 예수님은 의연하게 아버지의 뜻을 받아들이며 끝을 향하여 내달릴 준비를 하십니다. 바로 그때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옵니다. 곁에 있던 군중은 하늘에서 들려오는 외침을 알아듣지 못하지만, 예수께서는 확신에 차서 아버지의 뜻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서십니다. 당신이 땅에서 높이 들어 올려질 때 모든 이를 아버지께로 이끌어 들이겠다며(12,27-32), 당신의 죽음이 어떠할지, 나아가 당신 죽음이 가져올 구원에 대하여 담백하게 술회하듯이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이 고백에 마음이 아리어 옵니다. 한 알 밀알이 되고자 하시는 주님은 당신이 묻힐 자리가 십자가라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실 자리가 십자가임을 가감 없이 드러내십니다. 이로써 ‘한 알 밀알’에 대한 말씀은 예수님 자신의 죽음과 생명이라는 중의적 의미를 품은 표현임이 분명해집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기도와 하늘에서의 응답 역시 예수의 수난과 죽음이 지상의 사건이며 동시에 하늘 사건임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주님은 죽을 때 생명이 시작되는 신앙의 역설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흙의 품에 안긴 씨앗은 썩게 되지만 밀알 속에 깃든 생명의 힘은 많은 열매로 변화된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부활 역시 죽음의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우리가 한 알 밀알로 썩을 자리는 어디인가요?



임미숙 엘렉타 수녀(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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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4-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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