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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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5만 원권 신사임당과 5000원권 율곡 이이 그린 이종상 화백 인터뷰

한국 순교자와 성인 영정도 그려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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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돈을 벌고 모으는 것만큼 중요한 게 가치 있게 쓰는 겁니다. 돈을 잘 쓰면 100원으로 1만 원 값어치를 할 수 있어요. 운보 선생은 이걸 `돈의 마술`이라고 하더군요."
13일 만난 이종상 화백이 자신이 그린 5000원권을 들고 돈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돈 그리는 사람과는 옷깃만 스쳐도 부자가 된다"는 속설이 있다. 그래서일까. 일랑(一浪) 이종상(요셉, 73, 서울대교구 혜화동본당) 화백을 만나면 손을 만져 보거나 사인을 받겠다는 사람이 줄을 선다.

 하지만 노(老)화백은 세간의 이런 관심이 부담스럽다고 운을 떼며 "그 속설대로라면 제일 먼저 제가 백만장자가 되지 않았겠어요?"하고 웃었다.

 이 화백은 지폐 5000원권과 5만 원권 `얼굴`인 율곡 이이와 그의 어머니 신사임당 영정을 그린 작가다. 모자(母子)가 나란히 지폐 인물이 된 경우는 전 세계 어디에도 없다. 지폐 초상을 두 번이나 그린 화가도 유례를 찾기 어렵다.

 하지만 이 화백은 "운이 좋아 `최초`라는 타이틀을 얻은 것일뿐"이라며 "그저 그림 그리는 게 좋아 붓을 드는 화가 중 한 명"이라고 자신을 낮췄다.

 #생존 작가로는 처음

 이 화백의 겸손에도 그를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일이 계속 생긴다. 최근 충남 예산군이 그의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관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밝혀서다. 생존 작가의 기념관이 세워지는 것도 국내 최초다. 기념관은 예산군민들이 서명운동 등을 벌여가며 추진해온 사업이라는 점에서 더 의미가 있다.

 "예산은 태어나서 대여섯 살까지 살던 곳이에요. 그 후 서울에 올라와 지내다 6ㆍ25 전쟁 중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다시 예산으로 돌아갔지요. 지금은 예산이 많이 쇠락했지만 예전에는 문화와 경제 중심지였어요. 예산에 가서 `옷 잘 입는다`고 자랑하지 말란 말이 있을 정도로 멋쟁이들이 많은 도시였습니다. 제 예술의 원천인 고향에서 기념관을 지어준다니 고마울 따름입니다."

 #돈 그리는 화가


 그가 영정 기법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순종의 어진(御眞) 화가 이당 김은호 선생을 알게 되면서부터다. 서울대 미술학도였던 1960년대 초반, 그는 궁중화가들의 전통 기법을 배우고 싶어 무작정 이당 선생 집을 찾아갔다. 지폐를 그린 운보 김기창(1만 원권), 현초 이유태(1000원권), 월전 장우성(100원 동전) 등이 모두 이당 문하에서 수학했다.

 "당시 이당 선생께서 `서울대생이 내 집 문턱을 넘은 것은 처음`이라며 반가워하셨어요. 고학생이던 제 사정을 배려해 돈도 받지 않고 가르쳐주셨죠."
 그렇게 배운 조선 궁중의 영정 기법은 다른 한국화 기법과는 상당히 달랐다고 이 화백은 회고했다.

 "영정 기법 중에 육리북채(肉理北彩)라는 게 있어요. 육리는 피부 바로 밑에 있는 얼굴 근육을 말합니다. 우리 초상화는 점을 여러 번 찍어 선이 됩니다. 이렇게 얼굴 근육을 표현하면 웃는 듯 우는 듯한 미묘한 표정이 됩니다. 그리고 북채는 배채(背彩)라고도 하는데, 그림 뒤에 은은하게 배경 같은 색을 입히는 것을 말합니다. 인품을 넣는다고 말해요. 인품이라는 게 눈에 안 보이는 거잖아요. 그게 바로 북채 원리예요."

 한 국가의 지폐를 그리는 화가에게 돈은 어떤 의미일까.

 "돈을 그린 선배 화가들이 `돈은 돌[石]이 아니라 돈으로 봐야 하네`하는 말을 들려준 적이 있습니다. 요즘 세상을 보세요. 돈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건사고가 일어납니까? 돈은 살아 있는 생물입니다. 돈을 돈으로 보고 존중해야합니다. 돈을 목적으로만 보면 사람을 쳐서 죽일 수도 있지요."

 #그간 쌓아온 재능 주님께 온전히 환원

 이 화백은 성공한 화가다. 하지만 화실에만 파묻혀 있지 않는다. 30여 년 전부터 사재를 털어 독도를 오가며 `독도문화심기운동`을 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린 독도 그림만 600여 점. 유럽과 미국 각국에서 전시도 했다. 또 어린 학생들의 균형잡힌 미술교육을 위해 `미술영재과정-우리미술체험` 강의를 하고 있다.

 "예술적 재능이 제 것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회에 환원할 때 진정한 예술인으로서의 사명이 완성되는 것이죠. 주님께서 허락하신 덕에 이같은 탈렌트를 갖게 됐으니 저 또한 그걸 나눠 주님께 보답해야지요.(웃음) 노후에는 좀 더 부지런히 성미술 작업을 하려고 해요."

 사실 이 화백의 예술관 가장 중심에 있는 가치는 `신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평소 이 화백은 "예술은 하느님과 일치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말해왔을 정도다. 실제 그가 그린 성화 `원형상(源形象)` 연작에서는 항상 창조주이신 주님이 등장했다.

 "한국교회는 2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졌음에도 실제 신앙이 토착화된 부분은 적습니다. 주님의 구원역사에 대한 의식을 가지고 더욱 충실히 주님을 따라갈 때 신앙의 토착화가 자연스레 이뤄지지 않을까요. 앞으로 동양화 기법을 통해 한국 순교자와 성인들 영정을 그려 우리네 신앙을 드러내고 싶은 바람입니다." 이서연 기자

 이종상 화백은
 수묵과 채색, 극사실에서 추상표현주의까지 다채로운 조형세계를 탐구해온 대표적 한국화가인 이 화백은 대전고와 서울대 회화과를 나와 1968년부터 2003년까지 서울대 동양화과 교수로 재직했다. 1989년 동국대 대학원에서 동양철학을 공부, 박사학위까지 받았다. 이 화백은 자유분방한 필법으로 전통 한국화를 주로 그려왔다. 1998년 프랑스 문부성 초대로 `루브르 미술관 까르젤 설치 벽화`(6m×72m)를 선보여 세계 화단에서도 주목받았다. 서울 혜화동성당 부활성수대와 교육관 소성당 입구 성녀 소화 데레사상 등도 그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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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평화신문  2012-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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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13장 9절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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