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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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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묵상] ‘산 이들’의 소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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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연중 제32주일이면서 평신도 주일입니다. 평신도는 성직자를 제외한 모든 가톨릭 신자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1962. 10?1965. 12) 이전에 평신도는 말씀과 가르침을 ‘듣고 따르는 교회’로 수동적인 모습이었습니다. 공의회는 「평신도 사도직에 관한 교령」(1965. 11)을 공표하고 그들의 사도직 사명과 역할을 증진했습니다. 오늘 미사에서 교회의 선교 사명과 세상의 복음화를 위하여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면서 평신도의 소명을 다하여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다짐합시다.

그리스제국을 통치하던 알렉산더는 죽음을 앞두고 왕국을 장군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팔레스티나를 다스리던 셀루우코스 왕국의 안티오코스 4세(BC 175~164)가 그리스문화를 확산시키고자 이스라엘을 박해하던 시대가 제1독서의 역사적 배경입니다. 그는 자신을 신격화하여 에피파네스(‘신의 출현’)라는 칭호를 붙이고, 예루살렘성전에 제우스 제단을 만들어 유다 백성에게 이교 예식을 강요하고 돼지고기를 먹게 해 유다 항쟁을 유발합니다.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은 안티오코스의 강요된 헬레니즘에 저항했고 조상들의 종교를 포기하고 하느님의 법을 어기느니 차라리 죽겠다(2마카 7,2)는 순교 신심 드러냅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하느님께서 주신 지체를 박해자들이 이승에서 고문하고 앗아가도 주님께서 다시 살리시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됨을 증언(2마카 7,9.11.14)합니다.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서로 이웃을 사랑하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이 박해와 환난 속에서 보여준 믿음과 인내를 신뢰하고, 주님의 은총으로 그들을 격려하고 희망과 용기를 주시어 선행을 일삼도록 기원합니다. 모든 사람이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기에 주님 말씀이 빠르게 전파되어 악에서 구출되도록 기도를 청합니다.

성실하신 주님께서는 신자들의 힘을 북돋우시고 악에서 지켜주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주님께서 말씀을 실천에 옮기는 그들의 마음을 이끄시어 그리스도와 사랑의 일치를 이루고 끝까지 인내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빕니다.

오늘 복음에 나오는 사두가이들은 다윗 왕위를 계승한 솔로몬에게 충성한 사제 차독(1열왕 2,35)의 후손들로 기원전 2세기 마카베오 봉기 때 정치 세력화를 이룬 종교집단입니다. 그들은 토라(Torah)에 기록된 말씀만 믿었기에 바리사이들이 구전 전승을 인정하고 받아들인 부활도 천사도 영도 없다고 주장합니다(사도 23,8).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는 모세 법(후손에 관한 규정, 신명 25,5-10)을 근거로 가상 질문합니다. 일곱 형제가 있는데,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이고 자식 없이 죽어 둘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이고, 그 다음에는 셋째가, 그렇게 하여 일곱 모두 후사를 남기지 못하고 죽고 부인도 죽으면, 부활 때 누구의 아내가 되느냐고 묻습니다. 그들의 관념은 오로지 현세와 가족 중심에 고착되어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공관복음에 모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는’(마태 22,29; 마르 12,24) 그들의 어리석은 질문에 반론을 펴십니다. 장가들고 시집가서 자식을 두는 일은 이 세상 사람들의 일이지만 저세상에서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합당한 자격이 있는 이들에게는 이승 삶의 재현은 없다고 하십니다. 부활의 은총을 누리는 산 이들, 곧 의인들은 천사들 같아서 하느님의 자녀로 영원한 생명을 누린다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불타는 떨기나무 속에 나타나시어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다”(탈출 3,2.6.15.16) 하시며 모세에게 내리셨던 계시와 소명을 들려주십니다. 모세 시대의 성조들이 죽은 지는 오래입니다. 산 이들만이 하느님을 모실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현세가 지난 뒤에도 성조들의 생명을 지켜주시어 그들이 살아있듯이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이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있는 것입니다(루카 20,38)”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이에게 박해와 갈등은 따라다닙니다. 우리의 103위 순교성인과 124위 순교복자를 포함한 순교자들은 고문을 당하고 형장의 이슬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은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마태 5,10)”이라는 말씀을 믿고 그리스도를 따랐기에 영원한 생명을 누리는 ‘세상의 빛’입니다.

오늘 독서와 복음 말씀을 통해 의인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하느님을 뵈옵고 영원한 행복을 누리는 새 삶임을 봅니다. 부활이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삽니다(요한 11,25). 영원한 생명이란 참되시고 한 분이신 삼위일체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는 것(요한 17,3)입니다.

위령 성월에 우리는 기도하고 순례의 길을 걸으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리의 희망인 동시에 신앙의 핵심임을 마음에 새깁니다. 그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기도와 성사로 사랑의 계단을 오르며 신심을 기르고, 좁은 문을 향해 공덕을 성실히 쌓아가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평신도는 현세의 죽음의 문화를 사랑과 생명의 문화로 변화시키는 시대적 사명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희망과 사랑만이 인간다운 삶의 질서로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님과 신앙의 선조들도 우리를 위해 빌어주실 것입니다. 아멘.




김창선(요한 세례자) 가톨릭영성독서지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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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19-11-05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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