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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칼럼] (144)성탄까지 기다릴 수 없는 이유/ 로버트 미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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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갈수록 이탈리아 로마에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내거는 시기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 10여 년 전 이탈리아에서 핼러윈을 기념하기 시작한 이후, 점점 더 많은 가게 주인과 기업들이 오래전 미국에서 시작한 이 광풍을 받아들이고 있다. 10월 31일 핼러윈 행사가 끝나면 바로 전구나 크리스마스트리를 비롯해 크리스마스 용품들을 내놓고 있다.

올해는 심지어 교황청에서도 대림 시기가 시작하기 며칠 전부터 성 베드로 광장에 실물 크기의 구유와 아주 키 큰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기 시작했다. 구유에는 제작 과정을 신자들이 보지 못하도록 장막이 쳐 있었다. 아직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한 전구의 불도 켜지 않았다지만 말이다.

대림 제2주일이 다가오던 12월 9일 토요일, 교황청은 간단한 행사를 통해 구유 장식을 공개하며 크리스마스트리 전구에 불을 밝혔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인 12월 8일 바로 다음 날이었다. 이탈리아에서는 이날이 공휴일이다. 교황은 보통 이날 미사를 주례하는데, ‘비공식적인’ 크리스마스 시즌의 시작을 알린다. 이날 로마 시내 유명 관광지인 스페인 계단 앞 성모상이 서 있는 대리석 기둥 앞에서는 큰 행사가 열린다. 아침 일찍부터 수도회들과 신심단체, 본당, 시민단체, 가정과 개인이 성모께 봉헌할 꽃과 화환을 들고 와 기둥 주변에 놓는다.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 행사의 정점은 오후 4시경 교황이 직접 헌화하고 기도하며 행사에 참여한 수많은 군중을 향해 강복하는 일이다.

올해는 교황이 감기 증세를 보여 행사에 참여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다. 게다가 교황은 최근 심한 기관지염을 앓아 12월 1~3일 유엔 기후변화 당사국회의가 열리는 두바이를 사목방문하려는 계획을 최소하고 일정을 줄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교황은 실망시키지 않았다. 이날 정오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집무실 창문에 서서 광장에 있는 군중과 삼종기도를 바쳤다. 여전히 숨은 가빴지만 더 아파보이지는 않았다. 교황은 춥고 습한 겨울 날씨 때문에 하얀 롱코트를 입고 있었다.

교황은 이날 오후 4시 성모상에 헌화하기에 앞서 로마 성모대성당을 찾았다. 교황은 성모대성당에 있는 비잔틴 양식의 이콘인 ‘로마 백성의 구원자’(Salus Populi Romani) 앞에서 기도했다. 교황은 휠체어를 타고 성당을 찾은 수많은 군중을 통과해 이콘 앞에 도착했고 함께 기도했다. 이어 스페인 계단을 찾아 추운 회색 하늘 아래에서 그를 기다리던 군중의 환호를 받았다. 전 세계 가톨릭신자를 비롯해 교황의 건강을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이번 교황의 외출은 힘을 북돋아 주는 증표였다.

언제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한다는 명문화된 규정은 없지만, 이제 이탈리아 사회에서 교회와 세속을 모두 포함해 오랫동안 이어지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크리스마스 시즌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인 12월 8일부터 주님 공현 대축일인 내년 1월 6일까지 이어진다. 이 기간 동안 공휴일은 최소 5일이다. 12월 8일과 25~26일, 1월 1일과 6일이다. 교황의 생일인 12월 17일도 시즌 중간에 있으며 올해는 대림 제3주일이어서 큰 축하행사가 있었다.

하지만 주님 성탄 대축일의 준비와 또 다른 새로운 한 해의 시작이 달콤함과 빛으로 가득한 것은 아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바로 그 땅에서 전쟁과 테러가 만연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는 2년째 전쟁 중이며 전 세계 여러 곳에서 무장 투쟁으로 수많은 희생자가 생기고 있다. 교황은 우리가 단편적인 제3차 세계대전을 겪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리고 대부분 나라에서 정치적 분열이 심각해지고 있으며, 가톨릭교회에서도 마찰이 심해져 신자들이 갈라지고 있다.

대림 시기는 인내로 주님 성탄 대축일을 기다리는 때다. 이제 얼마 안 남은 주님 성탄 대축일을 더 고요하고 냉정하게 맞이해야 한다. 하지만 이 기다리는 시기를 제대로 보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주님의 성탄이 세속과 상업주의의 영향을 받아 먹잇감이 되고 있다. 우리에게 기다릴 필요 없이 지금 바로 시즌을 즐기라고 하고 있다. 유감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놀랍지도 않은 일이다. 성탄은 궁극적으로 평화와 인류의 선익을 통해 전쟁과 분쟁을 물리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너무나도 특별한 시기다. 사람들이 실제 주님 성탄 대축일 전부터 이를 즐기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로버트 미켄스

‘라 크루아 인터내셔널’(La Croix International) 편집장이며, 1986년부터 로마에 거주하고 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11년 동안 바티칸라디오에서 근무했다. 런던 소재 가톨릭 주간지 ‘더 태블릿’에서도 10년간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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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신문 202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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